2023년 4월 세상을 떠난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가 출간됐다. 이 작품은 작가가 투병 중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집필한 유작으로, 은퇴를 앞둔 노교수 시드니 바움가트너의 시선을 통해 상실과 애도, 기억과 시간, 삶의 본질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소설의 주인공 바움가트너는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고, 깊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간다. 어느 날,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던 중 그는 불에 그을린 냄비를 바라보며 갑작스레 아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생전 한 번도 발표하지 않았던 아내의 글들과 자신이 집필 중이던 원고가 교차하며, 그는 잊고 있던 과거와 직면하고 삶의 내면을 성찰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과정을 통해 바움가트너는 두려움 없이 과거를 돌아보고, 고통 속에서도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의 기억 속 사랑과 상실은 단순한 감정의 회고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감정의 복합성을 조명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폴 오스터는 이번 유작을 통해 임박한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인간이 맺는 관계와 그것이 삶에 미치는 깊은 의미를 조용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드러낸다. 오스터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타인의 부재가 남긴 자국이 어떤 방식으로 생을 변화시키는지를 성찰한다.
1947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오스터는 1982년 자전적 에세이 『고독의 발명』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브루클린 폴리스』 등에서 도시적 고독과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을 특유의 문체로 그려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7년에는 대작 『4321』로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문학적 정점을 재확인한 바 있다.
『바움가트너』는 그가 오랜 시간 천착해온 주제들(시간, 기억, 정체성)의 종합적 결산처럼 읽힌다. 작품 속 인용된 한 구절은 오스터의 사유가 도달한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개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허공을 보는데 새 한 마리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저렇게 하얀 구름이라니. (중략) 지구에는 불이 붙었고, 세상은 타오르고 있는데, 그래도 지금 당장은 이와 같은 날이 있으니 즐길 수 있을 때 이런 날을 즐기는 게 낫다. 이게 그가 보게 될 마지막 좋은 날일지 누가 알겠는가." (132쪽)
이 마지막 장면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처럼 다가온다. 『바움가트너』는 죽음을 앞둔 인간이 남긴 깊은 고백이자, 삶의 유한성과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고요한 송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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