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받으신 십자가형(刑)은 그가 사셨던 로마시대에 행해진 극형(極刑) 가운데 하나였다. 십자가 처형은 당시 로마 황제의 체제에 반란을 획책하는 자들에 대하여 내리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로마 시대에 행해진 십자가 처형에 대한 시대사적 연구를 통해서 예수께서 받으신 십자가형은 그 역사적 사실성이 더욱 명료히 드러난다. 독일 튀빙엔대 신학부의 복음주의 신약 신학자 마르틴 헹엘(Martin Hengel)은 그의 저서 『십자가 처형』(Kreuzigung)에서 역사적 예수께서 받으신 십자가형에 대한 시대사적 연구를 함으로써 예수께서 받으신 십자가형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자료들을 오늘날 우리들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이 글은 헹엘의 연구성과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I.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십자가 처형
초대교회 유대인 사가(史家)인 요세푸스(Josephus)는 로마군이 70년에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디도(Titus) 장군의 유대인 고문관으로 있으면서 예루살렘 함락의 모든 일을 목격한 장본인이었다. 3세기에 쓰여진 그의 증언은 십자가형의 잔인성을 다음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지를 뻗고서 처벌을 받을 때, 그들은 사형틀을 그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포박을 당하여 가장 뼈 아픈 고통을 받으며, 못 박힌다. 그들의 시체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개들은 모질게 씹어 먹는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페르시아와 마게도니아(Macedonia)의 전쟁에서 유발된 잔혹한 행위가 십자가 처형의 동기가 되었다고 본다. 십자가형은 통치자에 대하여 반기를 든 반란자들에 대한 형벌로 집행되었다. 십자가형은 범죄자들에게 수일동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가한 후 죽도록 하는 잔인한 형벌이었다. 통치자들은 십자가형을 집행함으로써 체제에 대한 반란에 대해 복수하는 원초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고, 이를 보는 대중적인 가학적(加虐的)인 잔인성을 만족시켰다. 통치자들은 효과를 거두기 위하여 십자가형을 공개적으로 실시하였고, 죄패를 달아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하게 하였다.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비인간적인 잔인성과 야수성 등 악마적인 본성의 표현이었다.
주전 3세기부터 하류계층 가운데 저속한 조롱거리로서 십자가(crux)형이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헤르도투스의 책에 의하면 십자가형은 본래 페르시아인들 사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대자료에 따르면 십자가형은 야만족들이 사용하던 일종의 처형양식이었다. 로마인들은 야만족이 사용하던 십자가 처형을 야만적인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노예 등 하류계층이나 체제에 대한 반란자들에게 사용하였다. 로마시대의 처형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매질을 하고, 처형당할 자가 가끔 처형장소까지 형틀을 메고 운반하도록 한다. 거기서 그를 양 팔을 벌린채로 못박은 다음, 일으켜 세우고 조그만한 나무 못으로 발을 받쳐놓는다.
로마 네로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A.D. 65)는 십자가형에 대하여 다음같이 증언하고 있다: “나는 거기에서 십자가들을 보았다. 그 십자가는 한가지 모양이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어떠한 자의 머리는 꺼꾸로 땅을 향하고 있었고, 다른 십자가에 처형당한 자의 국부는 창으로 찔려 있었다. 또 다른 십자가에 달린 자들은 교수대(絞首臺) 위에서 양팔을 뻗친채 처형당하였다.”
세네카는 삶을 십자가에 처형당한 자의 고통에 비교하였다: “고통을 잊게 하는 일, 즉 숨을 거두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상처를 짓누르며, 교수대(絞首臺)에 매다는 일은 가치있는가?” 세네카는 고대문학에서 유래한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단번에 숨을 거두기보다 방울 방울 피를 흘리며 사지(四肢)가 갈기갈기 찢기며, 고통 가운데서 서서히 죽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가? 저주받은 나무에 묶여 오랜 고통에 시달리고, 몰골은 흉악해졌고, 채찍을 맞은 자국이 어깨와 가슴에 부풀어 오르고 단말마의 고통 가운데서 마지막 숨을 몰아 쉬기를 원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살려달라고 수없이 애원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못으로 박는” 십자가 처형은 가장 잔인한 처형방법이었다. 최소한 매질은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행해졌다. 먼저 행해진 고문은 십자가형의 실제적인 고통을 단축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십자가형은 무엇보다 고통을 지속시키는 수단으로 취하여진 것이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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