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세계복음주의연맹)가 겉으로는 복음적 신앙고백을 하는 세계 기구인 듯하나 실은 가톨릭·이슬람 등과 교류하는 등 ‘종교 혼합주의’에 기울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달 2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주최한 ‘신학·실천·역사적 관점에서 본 WEA 문제점’ 주제 포럼에서 발제한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WEA가 본래의 복음주의 정신에서 이탈해 ‘문화적 포용주의’에 입각한 ‘신(新)자유주의’ 노선으로 갈아탔다고 지적하며 본래의 정신에서 벗어난 WEA 서울총회는 철회 또는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포럼은 사랑의교회 등 일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WEA 서울총회를 유치한 사실이 공식 발표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다섯 차례나 발표하는 등 문제점을 제기해 온 한기총이 WEA의 복음주의 노선 이탈을 신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예장 합동측 산하의 여러 노회와 많은 복음주의 교회와 단체들이 WEA 서울총회 개최를 우려하며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음에도 WEA 고위 인사들이 사랑의 교회 등 일부 대형교회와 손잡고 은밀히 일을 추진함으로써 한국교회 안에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현실에 냉철한 신학적 진단을 하겠다는 취지다.
먼저 광신대 양진영 교수는 ‘WEA의 신앙선언과 가치’와 관련해 WEA 서울총회의 홍보 책자에 수록된 WEA의 핵심가치 ‘복음’ ‘정통’ ‘보수’에 대한 문제부터 거론했다. 겉은 그럴듯한 데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그 증거로 WEA가 종교 다원주의의 온상인 WCC, 더 나아가 로마 가톨릭과 이슬람 지도자들과도 교류하는 등 혼합주의에 빠진 증거들을 열거했다.
양 교수는 WEA가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겉과 속이 다른 점을 지적했다. 복음과 정통, 보수를 표방하는 듯 선전하고 있으나 실은 ‘교회일치운동’ 이란 명목하에 복음 진리가 수용할 수 없는 종교 타협을 추구하는 등 신(新)자유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는 거다.
‘개혁신학 관점에서 WEA가 가진 문제점’을 주제로 발제한 서창원 전 총신대 교수는 WEA 고위직 인사로 서울총회를 주도한 이들의 복음주의 이탈 행보를 지적했다. 그는 사무엘 치앙 부사무총장이 무슬림 단체(Nahdlatul Ulama)와의 협력 활동을 통해 ‘최고의 친구(Best Friends)’ 관계를 구축한 사실과 WEA 의장이자 국제위원장, 사무총장 대행까지 겸임한 굿윌 샤나가 자신의 아내를 ‘사도’로 칭하는 등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이른바 ‘신사도운동’에 깊이 개입된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WEA의 핵심가치와 조직의 방향성에서 현저히 벗어난 이들이 주도한 서울총회에 대한 두 가지 큰 흠결을 지적했다. 첫째는 WEA가 개혁주의 신학과 실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보다. 말로만 복음주의일 뿐 WCC, 가톨릭, 이슬람과 교류하며 ‘종교 혼합주의’에 빠진 이들과 한국의 개혁교회가 연합해선 안 되며, 이를 무시하고 총회를 개최할 경우 한국교회에 엄청난 후유증을 남길 거라고 경고했다.
두 번째는 서울총회 개최의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다. WEA는 복음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세계 기구로 각 나라에서 하나의 복음주의 연합기관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한기총, 한교연 외에 어떤 기관도 WEA 회원으로 활동하거나 회원 자격이 주어진 일이 없다. 그런데 이번 서울총회는 회원도, 연합기관도 아닌 특정 대형교회가 유치했다. 절차적 하자가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한 결정이란 거다.
백번 양보해 사랑의 교회가 속한 합동 총회가 교단 차원에서 적극 협력하는 분위기라도 근본 문제가 덮어지진 않을 것이다. 법적으로나 규정상 처음부터 잘못 뀐 단추라는 거다. 하물며 합동 총회는 오래전부터 WEA와의 관계를 유보한 상태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WEA 서울총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할 정당한 절차 없이 일부 교회의 주도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도 정당성이 부족하다”며 “이는 한국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영적 권위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했다.
‘WEA 신앙고백서 결정 역사와 신학 정체성 평가’ 제목으로 발제한 광신대 김호욱 교수는 WEA 측이 주장하는 내용과 실제 행보 사이에 드러난 모순을 지적했다. WEA가 자신들을 한국교회 일각에서 ‘종교 혼합주의’ ‘종교 다원주의’ ‘종교 포용주의’라고 주장하는 건 사실과 다르고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란 입장을 취하는 것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에 나섰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신앙적 포용성과 협력이 중요하다라며 로마 가톨릭과 무슬림, WCC, 안식교 등과 연합을 추구하면서 어찌 스스로 스스로 개혁주의, 복음주의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포럼에서 신학자들은 WEA가 태생적으로 추구해 온 복음주의 정신을 망치고 있는 이들이 한국교회 대형교회와 합작해 추진한 WEA 서울총회는 복음주의 정신을 지키는 차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서울총회 유치 철회 또는 중단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날 신학자들이 포럼에서 지적한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WEA는 이미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기구로써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내상을 입었다. WCC와 동격, 또는 아류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건 WEA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WEA 조직을 장악한 일부 인사들의 배도나 다름없는 영적 신앙적 이탈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점에서 이 둘을 엄밀히 분리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WEA를 종교 혼합·다원주의 잡탕으로 망가뜨린 건 WEA의 복음 정신을 호도하고 있는 몇몇 고위 인사들이지 WEA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WEA 산하 각 대륙과 국가를 대표한 많은 이들이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하고 있다. 안타까운 건 WEA 서울총회 유치를 둘러싼 갖가지 추문에 이들의 복음을 향한 정직과 순수성까지 한꺼번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한국교회 또한 개인의 영달과 욕심 때문에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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