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하나님은 고통과 슬픔에서 빠져나갈 길을 약속하셨을까?"(Did God ever promise us a way out of pain and grief?)을 6월 1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난 5년 동안, 필자는 삶의 형태와 안정을 잡아주던 많은 구조들이 거의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시간을 겪었다.
치명적이었던 코로나19와의 사투는 여전히 필자가 짊어지고 가야 할 육체적 후유증을 남겼다. 그 직후에는 필자가 수십 년을 바쳤던 사역이 고통스럽게 끝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공개적인 상실과 더불어, 필자의 마음 가장 내밀한 곳을 건드린, 차마 자세히 털어놓을 수 없는 깊고 개인적인 슬픔도 함께 찾아왔다.
어떤 고통은 남들에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고통은 더 조용히 가슴에 품어야 한다. 그것이 덜 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사랑과 지혜, 그리고 품위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지나며 그 모든 무게가 거의 견딜 수 없을 만큼 버겁게 느껴졌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정도만 말해두고 싶다. 불평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생의 가장 깊은 슬픔을 겪어본 다른 이들의 마음에 필자 역시 어느 정도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뿐이다.
힘든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위로의 말을 건네받는다. 친구들은 하나님께 다 계획이 있다고 상기시켜 준다. 우리의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앞으로 더 밝은 날들이 올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해준다.
물론 필자 역시 그런 위로의 상당 부분에 동의한다. 하지만 최근 기독교계에서 점점 더 흔하게 들려오는 또 다른 종류의 격려가 있다. 우리의 고난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징조라는 것이다. 지금의 실패는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일 뿐이며, 승진과 회복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말한다. 우리가 끝까지 신실하게 믿음을 지킨다면, 이 땅에서의 보상과 억울함의 신원은 확실히 보장되어 있다는 식이다.
왜 이런 말들이 매력적으로 들리는지 안다. 실제로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사실로 증명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필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가 깊은 상실을 겪은 후에, '이 땅에서의 삶'이 무조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는가?"
분명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가르친다. 고난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시련은 완전하게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 아래 있다고 말씀한다.
하지만 도대체 성경 어디에, 믿음을 지킨 모든 신자가 결국 이 땅에서 어떤 형태로든 회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하는 바를 살펴보자. 욥은 상상할 수 없는 상실을 겪은 후 마침내 놀라운 회복을 경험했다. 요셉은 감옥에서 나와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다윗은 동굴로 도망치던 신세에서 결국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게 전개된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칭찬하셨던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 참수당했다. 이 땅에서의 회복은 없었다. 제2의 전성기도, 극적인 재기도 없었다.
스데반은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다. 사도 바울은 투옥, 매 맞음, 파선, 배신, 연약함과 고통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의 지상에서의 이야기는 처형으로 끝이 났다.
히브리서 11장도 마찬가지다. 이 장은 기적적인 구원의 이야기들로 시작한다. 나라들을 정복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으며, 군대들을 물리친다. 기적이 넘쳐난다.
하지만 곧이어 이야기는 극적인 반전을 맞이한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히브리서 11:35).
어떤 이들은 칼날을 피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칼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두 부류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오늘날 이 진리는 자주 강조되지 않지만,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신자의 이 땅에서의 삶이 눈에 보이는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결코 약속하신 적이 없다.
예수님 자신도 그런 약속을 하신 적이 없다. 그분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겠으나, 결국에는 모든 것이 너희가 바라는 대로 잘 풀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그분이 주신 약속은 고난의 '부재'가 아니었다. 고난 한가운데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궁극적인 '승리'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낙심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결코 하신 적 없는 약속을 은연중에 믿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의 회복이 찾아오지 않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저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심지어 성경이 진리인지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나 성경의 무오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쩌면 우리의 잘못된 '기대'에 있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 우리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그분의 최고 목표가 그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위대한 것이라면 말이다.
로마서 8장 28절은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 중 하나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만 읽고 멈춰버린다. 바로 다음 절은 그 '선'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해 준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로마서 8:29).
하나님의 최고 목적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더 편하고, 행복하고, 부유하고, 건강하고, 성공적이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최고 목적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욱 닮게 만드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고통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는다. 슬픔이 지워지는 것도 아니며, 모든 의문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주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생각보다 훨씬 더 이 땅에 매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깊은 영적 작업보다, 당장의 고통에서 벗어나 회복되고 억울함이 풀리기를 더 간절히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진리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죽기 전에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이 땅에서 어떻게든 보상받게 될 것이라는 얄팍한 희망보다 훨씬 더 견고한 믿음의 반석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모든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이 세상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데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그리스도께 내어드린 삶의 그 어떤 부분도 결코 헛되지 않다는 데 있다.
때때로 하나님은 이생에서 놀라운 회복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 하나만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에게 있어 인생의 마지막 장은 이미 쓰였고, 그것은 이 땅에서의 그 어떤 회복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럽다는 사실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