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함정을 피하는 법"(Avoiding the 'not a real Christian' trap)을 8월 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1763년 10월 1일, 복음전도자 존 웨슬리(John Wesley)는 한 여성을 위해 엑소시즘, 즉 구마 의식을 행한 뒤 그 일을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0시 반경, 우리 열 명은 전날 약속한 대로 함께 모였다. 필자가 ‘하나님께서 이 영혼을 구원하실 능력과 의지가 있으심을 믿지 않는 사람이 이 가운데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한목소리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늘 그녀를 구원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녀를 침대 양쪽에 단단히 묶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양쪽에 두 사람씩 배치해 붙잡도록 했다. 우리는 주님 앞에 그녀의 상황을 아뢰고, 그녀를 위한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즉시 사탄이 맹렬하게 분노했다. 그는 그녀가 기이한 방식으로 울부짖게 했고,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을 지르게 했으며, 개처럼 짖게 했다. 그녀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일그러졌고, 입은 양 귀에 닿을 듯 벌어졌으며, 두 눈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 당장이라도 머리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보였다.

곧이어 목에 심한 경련이 일어나 마치 목이 졸린 듯했고, 그 경련은 몸 안쪽으로 이어져 배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때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쇠막대기처럼 뻣뻣해졌고, 동시에 감각과 움직임을 완전히 잃은 채 숨조차 쉬지 않았다. 이내 몸이 너무 심하게 뒤틀려, 보는 이로 하여금 온몸의 뼈가 탈골됐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 여성의 머리가 완전히 뒤로 돌아가거나 초록색 토사물을 뱉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이 기록은 영화 <엑소시스트>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묘사는 또 다른 고전 공포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The Devil’s Advocate)>에 등장하는 악령 들린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그야말로 악몽 속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다.

이러한 사례가 역사적으로 흔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몇 달 사이 엑소시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월 가톨릭 방송망 EWTN 바티칸은 교황 레오 14세(Pope Leo XIV)가 국제구마사제협회(AIE) 대표들을 비공개로 접견했다고 보도했다.

협회는 오컬트와 밀교(esotericism), 사탄주의와 관련된 사례가 점점 더 널리 퍼지고 있으며, 이것이 많은 사람에게 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교황에게 전 세계 모든 교구에 적절한 훈련을 받은 구마 사제를 최소 한 명씩 배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엑소시즘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훈련받은 가톨릭 구마 사제는 약 15년 전 20명 수준에서 오늘날 약 150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수요가 공급을 앞서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진 워싱턴 D.C.의 사제이자 공인 심리학자인 스티븐 로세티(Stephen Rossetti) 몬시뇰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엑소시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근 엑소시즘 요청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귀가 실제로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늘날 더 많은 사람이 적절한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심리적 문제를 영적인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웨슬리 시대의 그 여성 역시 오늘날이었다면 전혀 다른 진단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마귀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만은 아니다

뉴저지주 하이브리지에 위치한 ‘우리의 거룩한 자비 성공회(Our Lady of Divine Mercy Anglican Church)’에서 사역하는 훈련된 구마 사제 댄 토드(Dan Todd) 신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귀는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람 역시 악한 일을 저지릅니다. 또한 조현병이나 해리성 정체성 장애 같은 정신질환은 악마적 빙의와 유사한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사례의 약 99%는 정신질환에서 비롯됩니다.”

이 말이 위안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모든 이상 행동이나 극단적인 심리 상태를 곧바로 악마적 현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종교학자 앤드루 체스넛(Andrew Chesnut)은 엑소시즘 요청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으로 기독교의 ‘오순절화(Pentecostalization)’를 꼽는다.

그는 “엑소시즘 열풍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의 오순절화, 특히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서의 확산”이라고 분석했다.

오순절주의는 성령뿐 아니라 악령을 포함한 영적 존재의 실재를 강하게 강조하며, 1970년대 이후 엑소시즘과 영적 전쟁을 신앙 실천의 중요한 영역으로 부각시켜 왔다.

필자 역시 일부 은사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이러한 현상의 극단적인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감기나 코막힘 같은 일상적인 신체 증상마저 곧바로 악한 영의 공격으로 해석하고 떠나가라고 명령하는 경우다. 물론 모든 은사주의자가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대편 극단도 존재한다. 악마적 활동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조차 이를 무조건 무시하거나 비웃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다.

C. S.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에서 이 두 극단을 모두 경계했다. 그는 인간이 마귀에 대해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상반된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마귀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귀를 믿되 그들에게 지나치고 불건전한 관심을 쏟는 것이다.

필자는 살아오면서 완전한 의미의 ‘빙의(possession)’라고 부를 만한 일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 영적 ‘억압(oppression)’으로 여겨지는 사례들은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신자를 포함한 어떤 사람이 그러한 억압에서 벗어난 뒤 경험하는 자유와 기쁨도 지켜본 적이 있다.

오컬트와 디지털 시대

오늘날 일부 전문가들은 오컬트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 자체가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다고 지적한다.

온라인 오컬트 커뮤니티가 확대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밀교적 관행이나 사탄주의적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이제는 인공지능(AI) 도구를 이용해 관련 자료를 손쉽게 생성하는 것까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 실제 악마적 활동의 증가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이 과거보다 훨씬 쉽게 오컬트와 초자연주의 콘텐츠를 접하고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기서 자주 간과되는 한 가지 사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제외한 신약성경에는 영적 전쟁에 관한 가르침이 많이 등장하지만, 교회를 향해 ‘엑소시즘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지침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신약성경은 반복해서 이렇게 명한다.: “마귀를 대적하라.” (약 4:7), “근신하라 깨어라.” (벧전 5:8~9),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 6:10~18),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 (고후 10:5)

신약성경의 강조점은 마귀에게 지나치게 몰두하는 데 있지 않다.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는 데 있다.

두려움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확신

엑소시즘 요청이 앞으로 계속 늘어나든 그렇지 않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마귀를 두려워하며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가르친다.

사탄은 실재한다. 유혹도 실재하고, 기만과 영적 전쟁 역시 실재한다. 그러나 빈 무덤도 실재한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엑소시즘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영적인 체험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지 모른다.

현대 문화는 하나님을 밀어냈다고 해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갈망까지 없애버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와 초월적인 경험을 원한다. 단지 그것을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어둠을 향해 문을 열어놓는다면, 그 어둠이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한다고 해서 완전히 놀랄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응은 공포나 집착, 혹은 무조건적인 부정이어서는 안 된다.

신약성경이 지난 2천 년 동안 가르쳐온 것과 같은 대응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마귀를 대적하며, 이미 그를 이기신 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기적

결국 가장 위대한 기적은 엑소시즘 자체가 아니다. 죄인이 성도로 변화되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자신의 나라로 옮기실 때마다 사탄은 또다시 패배한다.

사람이 죄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새로운 생명을 얻고, 성령 안에서 변화되어 가는 것 그것이 신약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영적 승리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마귀도 뒤집을 수 없는 영원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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