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정성구 박사

오래전 재미 동포 리차드 김(Richard Kim)의 소설 ‘순교자’가 있었다.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니고, 6.25때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10여 명의 목사들이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총살로 순교 당했다는 것으로, 내용을 요약하면, 인민군에게 끌려가다가 총살당한 목사님들은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 인민군에게 끌려 가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요, 목사이므로 사나 죽으나 문제 될 것 없으니, 당신들이나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에 동참하라!’고 고함을 쳤다. 그는 끝까지 목사로서 품위를 지켰고, 신앙을 고백했다.

그런데 아군의 CIA 정보국의 조사를 보면, 인민군에게 목숨을 구걸하던 10여 명의 목사들은 모두 총살되었으나,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신앙을 고백했던 목사는 살았다. 그리고 그는 목사직을 그만두고 어려운 피난민들을 도우며 헌신했었다. 그분이 바로 이학봉 목사이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은, 한국 최고의 테너 이인범 교수였다. 작가의 의도는 그렇게 죽음 앞에 한 목숨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목사들을 순교자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 쪽 방첩대는, 인민군에게 총살당한 그 사람들을 순교자로 깍듯이 예우했다.

그러나 작가 리차드 김(우리말로 김은국)은, ‘참된 순교자는 생명 내걸고, 죽음을 두려워 않고 오히려 공산당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순교자다’라는 메시지였다. 이 실화 소설이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나는 63년 전에 리차드 김을 만난 적이 있다. 공산당에게 총을 맞아 죽었다고 해서 반드시 순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고백하고,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다가 죽음 당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순교자라 할 수 있다.

순교자 중에 1561년 벨직 신앙고백(Belgic Confession)을 만들었던 귀도 드 브레(Guido de Brès)가 있다. 당시 교권(敎權)과 정권(政權)의 야합으로 그는 교수형으로 죽어갔다. 드 브레가 작성한 벨직 신앙고백은, 지금도 네덜란드 교회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와 함께 고백 되고 있다. 귀도 드 브레는 일찍이 칼빈이 있던 제네바로 가서 개혁주의 신앙을 깊이 연구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네덜란드 남부 지역인 벨기에에 머물면서 그 위대한 벨직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그리고 나이 40세에 결혼도 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명의 자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드 브레는 제네바 칼빈의 정신을 신앙고백으로 작성했다고 해서 지하 감옥에 투옥된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모든 이들에게 증거되기를 소망했고, 캄캄한 지하 감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 평안을 유지했다. 그는 단순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신앙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끝까지 부름 받은 충성된 종으로 남았다. 그는 순교를 앞두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편지를 남겼다. 그 편지는 오늘날까지 전해 오면서 읽는 사람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1567년 4월 12일의 편지를 보면, 그는 자신의 체포를 하나님의 섭리로 보았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나는 우연히 원수들의 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소.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했으니,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할 뿐이외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갈라놓으려는 것을, 받아드립시다. 우리가 결혼한 지 벌써 7년이 되었구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오래 행복하게 살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군요. 다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나의 순교는 패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었소! 여보! 나는 지금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설교했던 것을 실천하고 싶소! 사실 감옥이란 ‘좋은 학교’라 할 수 있소.

사랑하는 카트린! 내가 하나님의 ‘순교자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죄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영광을 허락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오, 나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우리 하나님께 모두 맡깁니다.

사랑하는 카트린!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집이 아니며, 하늘이 우리의 참된 본향입니다. 내가 먼저 가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장차 당신과 아이들도 함께 만나기를 바라오. 사랑하는 카트린! 어머니와 아이들을 부탁하고...나의 사랑 카트린! 주 안에서 승리하오!”

귀도 드 브레의 순교 신앙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되어진 일이다. 비록 그의 나이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를 당했지만, 그의 신학과 신앙은 500년이 지나도록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 교권과 정권이 야합할 당시, 기꺼이 참 순교의 잔을 마셨던 귀도 드 브레(Guido de Brès)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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