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곤 목사는 1958년 한국CCC를 창설하고 대학생 선교를 중심으로 민족복음화운동을 펼치던 중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1967년 7월 모금사역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LA에 머물면서 1967년 4월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된 나성제일교회에서 설교목사로 사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실은 김준곤 목사의 임종까지 보좌한 뒤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으로 사역하며 김준곤 목사의 역사와 사역을 발굴하고 정리해 온 김철영 목사(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상임대표, 김준곤목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가 이성우 목사(미주 크리스천헤럴드 대표)에게 처음 관련 내용을 전해 들은 후 나성제일교회 5대 담임목사를 역임한 김광삼 목사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또한 1995년 8월 열린 CCC간사가족수련회에서 김준곤 목사가 전한 ‘CCC 뿌리와 역사를 찾아서’와 당시 ‘CCC 편지’ 등을 통해서도 관련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철영 목사는 “김준곤 목사님은 1962년 2월 간사수련회에서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났고,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품고 의욕적으로 사역을 확산해 가던 중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으로 1967년 7월 모금사역을 위해 미국으로 갔다”며 “LA에서 지내면서 1967년 4월에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된 나성제일교회 설교목사를 했다. 김준곤 목사님과 또 한 분의 목사님이 설교목사로 번갈아 가면서 설교를 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그때 CCC 제자들이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김준곤 목사님께 여기서 교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김 목사님도 CCC 재정적 어려움과 한국 교회 일부의 반대도 있고 해서 그럴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서 깨어나면서 ‘내가 요나입니다’라고 고백하시고 1968년 7월 한국에 들어오셨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온 김준곤 목사는 1968년 8월 CCC 학사출신 108명과 함께 민족복음화운동의 제3집단을 표방하는 나사렛형제들을 창단했다. 이후 전군신자화운동 제안(1969년), 1971년 1월 1일 0시 기독교방송을 통한 민족복음화운동 선언, 시군단위 민족복음화 요원 강습회, 1971년 8월 대전충무체육관 1만명 민족복음화 요원 강습회, 1972년 7월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 1974년 8월 ‘엑스플로74’ 대회 등을 개최하며 민족복음화운동을 이어갔다.
김철영 목사는 “역사에는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김준곤 목사가 1967년 미국에 건너가서 돌아오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서 교회를 시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며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교통사고’라는 시련을 통해 소명과 사명을 다시 붙잡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민족의 심장 같고 새벽이슬 같은 대학생들을 모판으로 민족의 입체적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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