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학술 심포지엄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새문안교회 11층 미션홀에서 '북한지역 기독교 역사의 복원과 과제-『북한기독교역사사전』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다니엘 최 기자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11층 미션홀에서 '북한지역 기독교 역사의 복원과 과제-『북한기독교역사사전』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북한기독교역사사전』 출간을 기념해 북한지역 기독교의 역사를 지역별로 검토하고, 해방과 분단 이후 북한교회사 연구의 성과와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주최하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주관했다.

행사는 정병준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회장(서울장신대학교 교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이덕주 감리교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의 기조강연과 네 편의 주제발표, 총평 및 토론 순으로 구성됐다.

이덕주 교수는 북한교회사 연구의 흐름과 전망을 다뤘으며, 김일환 서울장신대학교 객원교수와 한규무 광주대학교 교수는 각각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의 기독교 역사를 분석했다. 이어 김칠성 목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교회의 분포와 형성을, 서선영 장로회신학대학교 객원교수는 일제 말기 함주지역 장로교회의 신앙 저항을 살펴봤다.

이덕주 교수 “북한교회사 연구, 민족 통일의 열정과 긴밀한 관계”

기조강연에 나선 이덕주 감리교신학대학교 명예교수는 '기억을 넘어 복원으로: 북한교회사 연구의 흐름과 전망'을 주제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과 분단 이후까지 북한지역 교회사를 기록하고 연구해 온 과정을 분석했다.

이 교수는 북한교회사 연구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른 목적과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평양노회와 장로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사 편찬 작업이 추진됐으며, 해방 이후에는 북한에서 활동했던 목회자와 교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1916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교회별 역사를 수집하고 정리하기로 결의한 뒤 평양노회를 중심으로 사료 정리가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1925년 『평양노회지경각교회사기』가 발간되는 등 교회와 노회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작업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러한 초기 교회사 편찬이 한국인 목회자와 신자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교회 설립과 선교활동뿐 아니라 한국인 신자들의 참여와 지역교회의 변화가 역사 서술의 대상으로 다뤄졌다고 분석했다.

해방과 분단 이후에는 북한지역 교회에 접근하기 어려워지면서 연구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월남한 목회자와 교인들이 고향 교회의 역사를 증언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남한에서 이북 출신 교회와 노회를 재조직하는 과정에서도 역사 편찬이 추진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해방 이후 북한교회사 연구가 교회의 역사적 전통을 보존하는 일과 함께 북한교회 재건 및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연결됐다고 밝혔다. 그는 “분단 이후 남쪽에서 진행된 북한교회사 연구와 저술은 민족 통일의 열정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80년대 이후 남북 교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북한교회사 연구에도 변화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기존의 월남 교인과 목회자 중심의 기록을 넘어 북한지역 교회와 선교기관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추진됐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통일 이후 북한교회 재건과 관련한 연구도 이어졌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북한교회사』와 『북한기독교역사사전』 편찬을 북한지역 기독교 역사를 정리하고 복원하는 작업으로 평가했다. 특히 개별 교회와 인물, 선교기관에 관한 기록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분단 이후 확인하기 어려웠던 북한교회의 역사를 검토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북한교회사 연구가 교회와 노회의 공식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신앙공동체를 구성했던 교인들의 경험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해체되거나 신자들이 월남하면서 남겨진 기록뿐 아니라 당시 신자들의 활동과 신앙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를 추가로 발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일환 교수 “서북 기독교, 근대화의 진원지이자 분단의 상흔 간직한 공동체”

첫 번째 발제에 나선 김일환 서울장신대학교 객원교수는 '평안도 지역 기독교 역사: 서북 기독교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평안도 지역의 교회 형성과 성장, 해방 이후 신앙공동체의 변화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평안도 지역이 한국 개신교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차지한 비중에 주목했다. 평안도는 중국과의 교류가 이뤄지던 지역으로 외래 문물에 대한 개방성과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결합하면서 교회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북 기독교는 지리적으로 중국을 오가는 관문이자 교류의 요충지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외래 문물에 대한 개방성과 자립적 중산층의 성장을 토대로 싹을 틔웠다”고 밝혔다.

이어 평안도 지역의 기독교가 교회 설립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지역사회 활동으로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인 신자들의 전도활동과 교회 운영 참여가 초기 신앙공동체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교회와 학교, 의료기관이 연결되면서 지역사회에서 활동 영역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평안도 지역에서 장로교가 차지한 비중과 교회·교육기관의 분포를 살펴봤다. 평안도에 교회와 기독교 학교가 집중되면서 지역 기독교가 교육과 사회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특히 평안도 지역의 기독교 형성을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동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인 신자들의 전도와 교회 운영, 지역사회 참여가 교회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함께 살펴봐야 서북 기독교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북한지역의 정치적 변화가 교회에 미친 영향도 분석했다. 북한 공산정권 수립 과정에서 교회와 국가권력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으며, 종교활동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교회 운영과 신앙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1946년 3·1절 기념행사를 둘러싼 갈등과 종교인들에 대한 통제, 한국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월남 등을 평안도 기독교 역사의 주요 변화로 제시했다. 북한지역의 교회 기반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남한으로 이동한 목회자와 교인들은 교회와 노회를 재조직하고 신앙 전통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남한에 정착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이 교회와 단체를 구성하면서 지역의 신앙 전통을 계승한 점에도 주목했다. 특히 분단 이후 남한에서 재조직된 이북 노회와 교회들이 북한지역 기독교 역사를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북 기독교는 한반도 근대화의 주요 진원지 중 하나인 동시에 분단 역사의 깊은 상흔을 간직한 신앙공동체이다”라며 서북 기독교의 역사를 성장과 발전뿐 아니라 분단과 이주, 교회의 해체와 재조직 과정까지 포함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기독교역사사전』을 활용한 연구가 교회 설립과 기관 운영, 인물 활동에 관한 기록을 보완하는 작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개별 교회와 교육기관의 역사를 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 분단 이후 신앙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규무 교수 “황해도 기독교의 특색, 다른 지역과 비교·검토해야”

두 번째 발제에 나선 한규무 광주대학교 교수는 '황해도 지역 기독교 역사: 『북한기독교역사사전』에 나타난 황해도 기독교의 특색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황해도 지역의 교회 분포와 교파별 특징, 주요 사건과 선교활동을 분석했다.

한 교수는 황해도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지역별·교파별·시기별 교세의 변화와 1925년 발간된 『황해도 답사기』의 기록을 검토했다. 이를 통해 황해도 지역에서 교파와 선교활동의 분포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분석했다.

그는 황해도 지역에서 개신교가 확산되는 과정에 여러 교파가 참여했으며, 지역의 사회적 환경과 교파별 활동에 따라 교회가 형성되는 양상에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교회의 설립과 성장뿐 아니라 교육과 사회활동, 종교집단 사이의 관계도 황해도 기독교 역사의 일부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소래교회의 설립 연혁에 관한 기록을 검토했다. 소래교회는 한국 개신교 초기 역사에서 언급되는 교회지만 설립 시기와 관련 인물에 관한 기록을 대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교회사에서 사용한 연혁과 새로 확인되는 기록 사이에 차이가 있을 경우 이를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신천사건을 둘러싼 역사적 서술의 문제를 제기했다.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설명이 기록과 관점에 따라 달라져 왔으며, 해당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사료와 주장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갈등도 황해도 기독교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제시했다. 한 교수는 해서교안 등 종교집단 사이에서 발생한 충돌을 살펴보면서 교회와 선교기관이 지역사회 및 다른 종교집단과 형성한 관계를 분석했다.

또한 해서교육총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기독교인들의 교육활동에도 주목했다. 지역 기독교인들이 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하면서 전도와 교육을 연결했으며, 이를 통해 기독교 활동이 교회 내부를 넘어 지역사회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김장호와 조선기독교회, 구미포 선교사 수양촌 등도 황해도 기독교의 특징을 살펴볼 사례로 제시했다. 특히 선교사 수양시설을 둘러싼 평가에서 선교사들의 활동과 지역 주민들의 시각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교사와 가족들을 위한 휴양시설의 운영을 일률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현지 주민들의 시각과 당시 사회적 환경을 배제해서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황해도 기독교의 특성을 밝히는 작업이 개별 교회와 사건의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색’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의 사례들과 비교·검토해야 하기에 이번 학술회의 후속 작업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황해도 기독교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교회와 인물의 설립 연혁, 지역별 교세 변화, 종교적 갈등과 교육활동을 검토하고, 사료 사이에 차이가 나타나는 부분을 추가로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철성 교수
김칠성 교수(목원대학교)는 '북한 강원도·경기도 지역교회에 관한 연구: 『북한기독교역사사전』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북한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의 개신교 교회 분포와 교파별 구성, 교회 설립 및 확산 과정을 비교했다. ©다니엘 최 기자

김칠성 교수 “북한 개신교 역사, 하나의 선교와 다양한 지역적 구현으로 이해해야”

세 번째 발제에 나선 김칠성 목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강원도·경기도 지역교회에 관한 연구: 『북한기독교역사사전』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북한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의 개신교 교회 분포와 교파별 구성, 교회 설립 및 확산 과정을 비교했다.

김 교수는 북한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의 교회 형성을 살펴보면서 지역의 지리적 조건과 교통망,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선교와 교회 확산의 양상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북한지역에 속한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확인되는 개신교 교회 248개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강원도 지역은 146개, 경기도 지역은 102개였으며, 교회의 분포와 교파별 비중에도 차이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강원도 지역에서 원산을 중심으로 교회가 형성된 뒤 농촌과 산간, 해안지역으로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강원도 지역에서 감리교회가 차지한 비중과 교회의 지역별 분포를 살펴보며, 선교사와 한국인 신자들의 활동이 교회 형성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반면 북한 경기도 지역에서는 개성을 중심으로 도시와 교통망을 따라 교회가 형성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도 지역에서 확인된 교회 102개 가운데 감리교회가 81개로 약 79.4%를 차지했다며, 강원도와 경기도의 교파별 분포에 차이가 있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차이가 선교사들의 활동뿐 아니라 지역의 경제적 조건과 교통망, 주민들의 생활환경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원산을 중심으로 교회가 여러 농촌과 산간지역으로 확산됐으며, 경기도 지역에서는 개성과 주변 도시 및 교통망을 중심으로 교회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특히 강원도와 경기도의 교회 형성을 하나의 선교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지역 개신교의 역사는 ‘하나의 선교, 다양한 지역적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지역별 교회사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지역교회의 형성과 성장을 외국인 선교사의 활동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국인 신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지역사회에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이 교회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는 단순히 선교사들의 활동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인 신자들의 복음 전파와 지역공동체 형성을 통해 이루어진 토착화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회 설립 연도와 교파별 분포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현재 확인된 교회 기록 외에 지역별 선교사 활동과 한국인 신자들의 참여에 관한 사료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두 지역의 차이를 비교하는 작업이 북한지역 개신교의 형성과 확산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선영 교수
서선영 교수(장신댸)는 '함경도 지역 기독교 역사: 기록의 비평적 읽기를 통해 본 일제 말기 함주지역 장로교회의 저항'을 주제로 일제강점기 말기 함주지역 장로교회 신자들의 신사참배 거부와 신앙공동체의 활동을 분석했다. ©다니엘 최 기자

서선영 교수 “공식 기록과 신앙공동체의 실제 활동 구분해야”

네 번째 발제에 나선 서선영 장로회신학대학교 객원교수는 '함경도 지역 기독교 역사: 기록의 비평적 읽기를 통해 본 일제 말기 함주지역 장로교회의 저항'을 주제로 일제강점기 말기 함주지역 장로교회 신자들의 신사참배 거부와 신앙공동체의 활동을 분석했다.

서 교수는 일제 말기 신사참배 강요와 교단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함주지역 교회들이 겪은 상황을 살펴봤다. 특히 이계실 목사와 지역교회 신자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교단의 공식 행정기록과 실제 교회 현장에 나타난 신앙 저항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이후 교단 차원의 결정과 달리 지역교회에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이계실 목사와 교인들이 교단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 신앙적 입장을 유지하려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서 교수는 1937년 동상리교회 사경회 준비 과정에서 이계실 목사가 신사참배에 동조하는 목회자를 초청하라는 요청을 거절한 사례를 제시했다. 이러한 행동은 지역교회가 교단의 행정적 결정과 별개로 신앙적 판단에 따라 움직였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신사참배를 거부한 일부 교회가 노회에서 탈퇴한 것으로 기록됐지만, 이후 작성된 노회 명부에도 해당 교회들이 계속 기재돼 있는 사례를 분석했다. 서 교수는 이러한 차이가 실제 신앙공동체의 활동과 교단의 행정기록을 구분해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는 “이 구술 전승과 당대 명부 사이의 간극을 비평적으로 해명함으로써, 본 연구는 성도들의 주체적, 영적, 실질적 이탈과 노회의 행정적 역류라는 이중적 역사적 실상을 명확히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함주지역 상수리교회의 예배당을 둘러싼 갈등도 살펴봤다. 일제 말기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교회가 헌금과 교회 재산을 둘러싼 압박을 받았으며, 이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관제 교단과 지역교회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상수리교회 신자들이 교단을 통해 강제 배정된 헌금에 반대하고 예배당을 지키려 했던 사례를 검토했다. 그는 이러한 사례를 신사참배 강요와 전시 동원 정책에 대한 지역교회의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서 교수는 해방 이후 함주지역 교회 신자들이 겪은 변화도 다뤘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교인들 가운데 일부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남한으로 이동했으며, 이후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계실 목사가 한국전쟁 당시 함주지역 교인들을 이끌고 남한으로 피난한 뒤 신앙공동체를 재건한 과정을 제시했다. 그는 이러한 사례가 일제 말기 교단의 공식 기록에서 확인하기 어려웠던 지역교회의 신앙적 연대가 이후에도 유지됐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이 같은 연구를 통해 함경도 교회사 연구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사참배 거부와 관련된 교단의 공식 기록뿐 아니라 당시 교인들의 증언과 지역교회 관련 자료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향후 과제로 함경도 지역교회 연구의 지리적 범위 확대와 공식 기록에 대한 비평적 검토, 일제 말기 신앙 저항과 해방 이후 교회 재건 과정에 대한 후속 연구를 제시했다. 특히 기존 교회사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농촌 교인들의 활동과 신앙공동체의 변화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정병준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회장이 좌장을 맡아 총평과 토론을 진행하는 순서로 진행됐으며 모든 순서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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