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할 준비가 됐다고 여긴 사람만 부름받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도 부르시고, 그와 함께하시며 맡기신 일을 감당하도록 이끄셨다. 예레미야도 그랬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이 너무 어려 말씀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이라고 말하지 말고, 보내시는 곳에 가서 명하시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며 그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다(렘 1:6~8).
왜 하나님께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예레미야를 부르셨을까?
1. 하나님은 부르신 사람을 준비시켜 가신다
예레미야는 선지자가 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도 어리고 말할 줄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예레미야가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노라.”(렘 1:5)
필자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위로를 받는다. 예레미야가 자신을 미처 알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아셨다는 사실 때문이다.
필자도 살아오면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인 순간이 적지 않았다. 그때는 부족한 점만 눈에 들어왔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그 부족함 속에서도 조금씩 준비시켜 주셨음을 깨닫게 된다. 부르심에 응답하려면 모든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이야기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한 걸음을 내딛는 데서 준비가 시작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2. 인생 후반에 찾아온 글쓰기의 사명
예레미야의 부르심을 묵상하다 보면 필자의 삶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르심이 있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필자는 젊은 시절부터 글을 써 온 사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언젠가 책을 여러 권 쓰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고 미국에 온 뒤에는 사업으로 바빴다. 글쓰기는 늘 다른 사람들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러다 6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감사에 관한 짧은 글을 시작으로, 살아오며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씩 적었다.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보여 주려던 글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 같은 은혜를 기억해 두고 싶었다.
그렇게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고, 또 다른 책으로 이어졌다. 기독일보와 KCMUSA에 글을 연재하면서 독자들로부터 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필자가 더 놀랐다. 문학 신인상을 받았을 때는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이런 상을 받을 사람이 맞는가?’ 상을 받은 기쁨도 컸지만, 부족한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은혜를 전할 수 있었다는 감사가 더 컸다. 돌아보면 필자에게 맡겨진 일은 살아오며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기록해 나누는 것이었다.
예레미야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전했듯이, 필자도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기보다 하나님께서 삶 가운데 베푸신 은혜를 담고 싶다. 그래서 새 글을 쓰기 전에는 지금도 먼저 기도한다 “하나님, 제 생각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담게 하여 주십시오.”
3. 사람의 반응보다 맡겨진 일에 충실하기
부르심을 받은 뒤 예레미야가 걸은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조롱과 박해를 받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맡겨진 말씀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필자는 그 모습을 묵상하며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짧은 글 한 편을 쓰더라도 성경을 다시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문장을 붙들고 오래 고민할 때도 있고, 다 쓴 글을 여러 번 고칠 때도 있다. ‘이 글이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필자가 글을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맡기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칭찬을 듣거나 작가라는 이름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필자의 삶에 베푸신 은혜가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마음으로 한 편 한 편 써 내려가고 있다.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글을 대하는 태도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필자는 오늘도 글을 마칠 때 ‘얼마나 잘 썼는가’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았는가’를 먼저 묻고자 한다.
4. 돌아보니 글쓰기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였다
직장에 다니고 사업을 하던 시절, 글을 쓰며 살아가는 일은 필자의 계획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삶의 후반부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 사업을 하며 배운 것과 가정에서 깨달은 믿음의 소중함, 선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된 경험이 글의 바탕이 됐다.
나이가 들었다고 사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배웠다. 지나온 세월의 기쁨과 눈물, 성공과 실패, 감사와 기다림은 그때만 해도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오늘 쓰는 글의 한 줄 한 줄에 담겨 있다.
필자는 새 글을 시작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런 기도를 드리곤 한다 “하나님, 제 생각을 기록하게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행하신 일을 담아내게 하여 주십시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하나님을 조금 더 가까이 만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필자에게 글을 쓰는 시간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기도 하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기록하며 사명을 감당했듯이, 필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믿음과 감사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얼마나 많은 글을 남겼는가보다 맡기신 말을 끝까지 전했는가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때 맡겨 주신 일을 충실히 감당했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고 싶다.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 하나님은 왜 예레미야를 부르셨는가?
- 하나님께서는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도 부르시고, 순종의 걸음 속에서 준비시켜 가신다.
- 사명은 나이나 환경에 매이지 않는다. 인생의 후반부에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맡기실 수 있다.
- 사명의 가치는 사람들의 인정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얼마나 충실했는지가 중요하다.
-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기록해 나누는 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이 될 수 있다.
- 맡겨진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삶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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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