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한선지포서 김신숙·이재환·조준형 선교사 초청,
선교사 가정·재정·이양·파트너십 등 솔직한 경험 나눠
40~50년 전 한국교회의 파송을 받아 평생 선교사로 한길을 걸어온 선배 선교사들은 다음세대에 어떤 선교의 유업을 남기고 싶고, 또 어떤 모습은 닮지 않기를 바랄까.
이들은 공통으로 ‘결국 선교는 삶으로 복음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기 위한 강한 열망과 ‘말씀과 기도’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냈고, 현지교회와 동등한 입장에서 동역하면서 수많은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저녁 경기도 가평 필그림하우스에서는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주최한 제24회 한국선교지도자포럼(한선지포) 세션 2 ‘기억하다’(코디네이터 고성준·조지훈 목사)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김신숙·이재환·조준형 선교사 등 시니어 선교사 3인이 패널로 참석해 다음세대를 위한 영적 유산을 나눴다.
김신숙 선교사는 1976년 중동 지역에 파송된 1호 중동선교사로,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로 파송됐으나 2개월 만에 목사 선교사 신분이 노출돼 추방됐다. 이어 1977년 이집트에서 선교를 시작해 한인들을 위한 카이로한인교회를 개척했다. 하지만 함께 파송됐던 남편 이연호 선교사를 2년 반 만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고, 독신 선교사로 반세기 동안 이집트 선교 현장을 지켰다. 총신대 사서 경력을 살려 ‘이집트복음주의신학교’ 도서관 사서 및 교수로 사역했고, 애굽선교센터, 알샤피아 선교훈련학교 등을 이끌고 있다.
이재환 선교사는 1984년 감비아로 파송돼 15년간 청소년 및 기술 교육 중심의 전인적 사역을 하여 현지인 목사들을 독자적으로 세우고, 후배 선교사에게 사역지를 이양했다. 이어 2000년 미전도종족선교단체인 국제컴미션(Come Mission)을 설립해 국제대표로서 선교 동원가 및 훈련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조준형 선교사는 1986년 태국으로 파송돼 현지교단과 동반자선교로 태국기독교단(CCT) 전도훈련원을 설립 및 운영했으며, 한태기독교교육센터(한태선교센터) 관장으로 사역하며 산족 교회개척, 현지 목회자 재교육, 청소년 신앙 기숙사 사역 등을 했다. 이후 라오스 접경 지역에 전도개척훈련원을 세워 개척 사역을 이끈 뒤 후배 선교사에게 이양하고 은퇴했다.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된 이 세션에서 세 선교사는 가정과 자녀, 재정, 사역 이양, 현지교회와의 파트너십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경험과 조언을 나누며 참석자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시니어 선교사들이 이야기하는 ‘선교의 본질’
올해 한선지포 프로그램위원장인 고성준 목사(수원하나교회)는 세션 2의 기획 배경으로 “다음세대가 어른 선교사님들의 유업과 축복을 이어받는 자리가 되길 바라며 세 분을 이 자리에 모셨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선교가 시행착오를 겪어 왔지만 세 분은 가장 모범적으로 사역해 온 분들로, 선교 유업으로 이어가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함께 듣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첫 질문은 ‘젊은 시절 확신을 갖고 선교지에 갔지만, 현장에서 선교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었다. 1984년 감비아로 파송된 이재환 선교사는 “당시 파송예배에서 목사님이 선교지에 가서 순교하라고 설교하셨고, 실제로 아프리카에 가서 살아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그때는 선교지에 가면 살아선 못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선교를 잘 몰랐던 것”이라며 “당시 한국에 KIM(한국국제선교회) 외에는 선교사를 체계적으로 모집·훈련해 관리하는 곳이 없었는데, 지금 한국선교가 굉장한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한국 첫 중동선교사로 이집트에서 반세기를 사역한 김신숙 선교사는 남편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들어갔다가 추방된 뒤 이집트로 향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중동 상황을 너무 모르고 들어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이집트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고했다가 나중에 그렇지 않은 부분들로 인해 선교에 어려움을 많이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1986년 태국에 파송된 조준형 선교사는 “후원교회가 전적으로 지원해 주니 하고 싶은 사역을 마음껏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교단 간 협약에 따른 동반자 선교였기에 모든 것이 현지교회가 원하는 방향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조 선교사는 “170년 선교 역사를 지닌 태국교회에는 우리보다 나은 신앙과 인품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며 “부족한 30대 후반의 젊은 선교사를 받아주고 인정해 준 태국교회가 저를 키웠다”고 고백했다.
‘가장 잘한 선택과 아쉬운 선택’에 대한 질문에 이재환 선교사는 가장 잘한 것으로 ‘공동생활’을 꼽았다. 이 선교사는 함께 일했던 미국인 선교사가 20대에 감비아에 와 80세에 떠날 때까지 단 한 명도 개종시키지 못한 것을 보며 처음에 ‘나는 아예 가능성이 없겠다’고 절망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다 예수님이 3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공동생활하신 것을 떠올리고, 학교를 세워 기숙사에서 현지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새벽기도와 노동, 공부를 함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선교사는 “한 젊은이는 ‘기독교는 잘못된 종교인데 이 선교사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는 고민 끝에, 코란과 성경 위에 차례로 손을 얹고 참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기도한 뒤 역사가 일어나 예수를 믿게 됐다”며 “이 공동체에서 4명이 목사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처음 오해한 것은, 나는 그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복음과 예수만 전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그들은 복음을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복음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됐다”며 “삶의 중요함을 알고 삶으로 선교하여 3년 살아보고 안되면 내버리고 한 것이 적중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같이 살면서 매일 저녁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데, 믿을 사람과 안 믿을 사람이 보인다. 가짜는 떠나게 된다”며 “마을 사람들에게서 ‘기독교는 나쁜 종교지만 선교사의 종교는 좋은 종교’라는 말을 들었다. 언어의 소통은 결국 마음의 소통인데, ‘보이지 않는 언어’인 삶으로 무슬림의 마음을 열게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신숙 선교사는 ‘사람을 키운 일’을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이집트 신학교에서 10년간 도서관 사서로 일한 뒤 강의를 맡게 된 김 선교사는 학기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 중 세 제자를 가장 사랑하셨듯, 이 반에서 세 제자라도 키우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실제 학기가 끝난 뒤에도 학생들을 계속 만나면서 제자를 기를 수 있었다고 했다. 그 결과 첫 제자는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아랍교회와 중동 선교에 앞장서고 있으며, 두 번째 제자는 한국의 ACTS에서 공부한 뒤 이집트에서 김 선교사와 동역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제자들이 중동과 유럽, 호주로 흩어져 사역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고 배가 부르다. 이런 것이 사람을 키우는 재미”라고 했다.
반대로 가룟 유다의 배반과 같이, 배반한 제자로 인한 아픔도 털어놨다. 김 선교사는 “50년 사역하며 결국 사람을 키우는 데서 실망하고, 사람을 키우는 데서 소망과 기쁨을 얻는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조준형 선교사는 가장 잘한 선택으로, 사역 17년쯤 됐을 때 한 달간 ‘주님이 인정할 만한 선교사입니까’라고 묻는 기도를 하고, 사역지를 변경한 것을 들었다. 당시 후원교회가 세운 한태기독교교육센터 관장으로 신학교 강의와 교회 지원을 하던 조 선교사는 “개척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 증거하는 일에 매진해야 하는데, 행정적인 일을 주로 하는 양반 스타일의 선교사가 된 것을 깨달았다”며 ‘모든 후원 책임은 하나님이 지신다’는 약속과 확신으로 사임했다.
이어 태국 교단의 결정에 따라 치앙마이에서 600km 떨어진 라오스 접경 지역으로 옮겨, 선교사가 없던 곳에 전도개척훈련원을 세웠다. 조 선교사는 “필요한 재정은 하나님이 여러 사람을 통해 채우셨다”며 “이것이 하나님 앞에 잘한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역과 사역지를 바꿀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이라고 간증했다.
가장 아쉬운 선택으로는, 다른 현지 지도자들에게 묻지 않고 자신이 보기에 좋은 사람을 택해 개척교회 사역자를 세운 일을 꼽았다. 똘똘하고 말 잘하고 확신이 있는 신학교 제자를 개척교회의 전도사 부부로 세웠으나, 1년 뒤 그가 교인들과 함께 조 선교사를 밀어내려는 일이 있었다. 조 선교사는 “제가 보기에 좋고 믿을만하다고 해서 다른 현지 지도자들에게 문의하지 않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고 회고했다.
◇시니어 선교사들이 털어놓는 자녀 양육
조지훈 목사(기쁨이있는교회)는 “부르심은 선교사 개인이 받지만, 배우자와 자녀는 준비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사역 가운데 가족과 자녀 양육의 문제를 물었다. 이재환 선교사는 가난한 감비아 아이들을 모아 기숙학교를 하면서, 자녀만 외국인 학교에 양심상 보낼 수 없어 현지 학교에 보냈다고 했다. 또 “좋은 학교를 보내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없었다”며 “가방끈이 짧은 게 아니라 아예 가방이 없던 베드로도 하나님이 그를 들어 쓰시니 위대한 인물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 학교는 학생들에게 점심을 주지 않았고, 아이들은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아침에 물도, 밥도 안 먹고 등교했다고 한다. 그 후 자녀를 선교사 자녀 학교에 보냈지만, 자녀는 ‘부모가 나를 버렸다’고 느껴 일부러 편지 위에 눈물을 떨어뜨려 보내기도 했다. 그 사실을 현재 L국 선교사가 된 아들이 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됐다는 이 선교사는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우리 집 아이가 고생했다. 그 책을 읽고 제가 굉장히 회개했다”며 “아들에게 사과했더니 ‘아빠 괜찮아요. 그때 많이 배웠어요’라고 하더라. 잘 커서 선교사가 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신숙 선교사는 남편이 떠난 뒤 만 6살, 만 4살 만 3살의 어린 세 딸을 홀로 키운 사연을 전했다. 현지 학교와 외국인 학교에 딸들을 보내지 못해, 대신 대사관 관저의 닭장을 고쳐 세운 한국 초등학교에서 교육했고, 김 선교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던 미국 대사관 직원의 부인이 딸들에게도 영어를 가르치고 돌봐줬다. 이후 그 부인의 권유로 딸들을 파키스탄의 선교사 자녀 학교에 보냈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이 남편을 먼저 데려가시더니 아이들을 케어해주는 사람까지 옆에 세워 주셨다”고 고백했다.
조준형 선교사는 4살, 3살 자녀들과 태국에 들어간 뒤, 주말마다 네 식구가 함께 산족 마을 선교를 다녔다고 했다. 당시 태국초등학교는 외국 국적자에게 문교부 졸업장을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태국교단이 운영하는 외국인 학교에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자녀들이 태국어, 영어, 한국어를 모두 잘하게 됐다고 전했다. 조 선교사는 “한번은 아이가 ‘나도 한국 친구 갖고 싶다’며 울던 외로운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잘 자라 자녀들이 선교 후원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선교 현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선교 현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이재환 선교사는 수없이 걸린 말라리아와 교통사고로 갈비뼈 7개와 어깨뼈가 부러지고 머리를 다쳤던 때를 떠올렸다. 이 선교사는 “나는 현지 병원에 갔다가 상태가 더 심해져, 미국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함께 사고를 당한 감비아 형제는 척추를 다친 채 고생하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며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재정에 대해 이 선교사는 “파송교회가 15년 동안 선교비를 한 번도 보내지 못했지만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성도들이 그만큼 기도해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영국 WEC에서 훈련받으며 소위 믿음선교(Faith Mission)를 배웠다”며 “저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라’고 명령했다는 것을 믿었다. 제 믿음이 커서가 아니라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는데, 15년간 한 번도 재정이 모자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에 말하고 싶은 것은, ‘선교비를 안 줘도 좋으니 파송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지시는데, 한국교회가 너무 선교를 경제적인 논리 가운데서 찾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선교사는 컴미션 사역으로 미국에 부름받은 뒤, 감비아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자녀가 미국의 한 대학 총장에 편지를 써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었다며 “정말 우리 선교사들의 특권은 어떤 경우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신숙 선교사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남편을 잃었을 때를 언급했다. 함께 사역한 지 2년 반 만에 남편이 집회를 가던 중 사막길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김 선교사는 당시 대수술을 받으러 한국에 와 있었다. ‘3년 만에 이집트 선교가 끝나야 합니까’고 묻는 그에게 하나님은 ‘네가 가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셨고,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갔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이후 3년은 광야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이 기도와 말씀으로 나를 사역자로 기르셨다”며 “선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어떤 상황과 역경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만 의지하고 함께 가면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선교 현장에서 많이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준형 선교사는 태국에서의 사역 이양의 경험을 나눴다. 동반자 선교 원칙에 따라 현지에서 마련한 땅과 건물은 모두 현지 교단 명의로 두고 운영권만 맡았던 조 선교사는 선교센터를 후배 선교사에게 넘긴 데 이어 은퇴 2년 전부터 개척훈련원의 이양을 준비했다. 희귀병을 앓는 사모와 함께 40도가 넘는 선교지로 오겠다고 응답한 후배 선교사 부부에게 사역을 넘긴 조 선교사는 “내가 센터를 지은 것도, 내가 헌신해서 센터가 잘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므로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셨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양할 수 있어 주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계산하지 말고, 빨리 끝내야 할 과업 해나가길”
‘후배들이 닮지 말았으면 하는 모습’, ‘다시 20~30대로 돌아간다면 다르게 하고 싶은 것’을 묻자 이재환 선교사는 “선교단체의 책임자 또는 동원자로 훈련하는 사람으로서, 해마다 후배들의 헌신도, 열정, 의지가 다르고, 또 이것이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저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선교에 대해 가진 마음이 동일하다. 제가 선교지에서 견디게 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영국에 가서 훈련받을 때, 그들이 제게 도전을 준 것이 FTT(Finishing the Task), 곧 빨리 과업을 마치는 선교 전략이었고 지금도 그 마음이 변치 않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선교의 소명은 모두가 다 받은 것이지 특별한 사람만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선교 소명을 환상이나 특별한 체험으로만 설명하면 평범한 성도들은 스스로 나는 아니라고 하게 된다. 소명은 모두가 받은 것이고,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된 것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소명만큼이나 강하다”고 전했다. 이어 “선교를 계속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끝내야 할 과업, FTT로 바라보라”고 당부했다.
김신숙 선교사는 “제가 젊었다면 세계의 흐름을 좀 더 자세히 공부하고 전략적으로 일했을 것”이라며 “한국선교에는 아직 지역별 전략이 부족한데, 전략적으로 일할 수 있는 한국교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50년 사역 자료를 아카이브로 만들고 있다며 “아랍어를 쓰는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을 위한 선교 전략 수립에 쓰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선교사는 “제 나이가 80을 바라보지만 마음은 청년이라, 젊은이들을 보면 정말 가슴이 뛴다”면서도 “요새 젊은이들은 너무 계산적인 게 많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계산으로 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만 된다. 말씀과 기도에 열중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잘 발전시켜 각 전문 분야로 들어가 삶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생활 선교사’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준형 선교사는 “눈에 보이는 열매를 빨리 얻으려고 재정과 선물로 사람을 모으는 동정(sympathy) 선교가 아니라, 삶을 나누고 함께 동역하는 공감(empathy)의 선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조 선교사는 “언어도 부족한데 목사라는 이유로 먼저 가르치고 신학교부터 세우려 하면 현지인과 맞지 않는다”며 “긴 안목을 가지고 처음 5년은 현지교회에서 배우는 기간으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한국선교의 유업은 뜨거운 기도의 영성과 분명한 복음”
‘다음세대가 놓치지 말아야 할 20세기 한국선교의 유업’에 대해 이재환 선교사는 “한국교회에는 선교의 불, 주님을 사랑하는 불이 있다”며 “여러 나라에서 통성기도를 가르쳐 봤지만 쉽게 따라 하지 못한다. 한국식 기도의 열정과 뜨거움이 마지막 시대 한국교회가 쓰임 받을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통일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러시아로 가는 길이 열리면 한국교회를 통한 ‘끝내기 선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신숙 선교사는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냈기에 한국교회가 축복 받았다”며, 한국 청년들이 이집트에 비전트립을 와서 현지 목회자 자녀·선교사 자녀들과 함께 소리 내어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에서 소망을 봤다고 전했다. 김 선교사는 “한국의 영성이 지금 이집트 안에 들어오고 있다”며 “우리 한국 청년들이 중동의 또 다른 선교지에 불을 더 붙이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형 선교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복음, 구원복음, 하늘복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며 “많은 사역을 하더라도 그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생명이 나타나야 한다. 또 선교사들은 그 복음을 현지인들이 자신의 문화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지혜와 능력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번아웃(burnout)’ 경험에 대해 세 선교사는 모두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자녀들과 떨어져 사역하면서, 소속 선교부에 요청해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안식년을 쪼개어 여름방학, 겨울방학마다 아이들을 만나는 ‘분할 안식년’을 보냈던 것이 번아웃을 막아 줬다고 말했다. 은퇴 후 한국에 머무는 조준형 선교사는 “사무엘처럼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내와 아침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며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하게 돼 번아웃보다 오히려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고성준 목사는 “세 분을 잘 모신 건지 잘못 모신 건지, 큰 도전이 되면서도 좌절도 된다”고 말해 장내에 웃음이 번졌다.
◇동반자 선교와 파트너십 “현지교회가 원하는 것부터”
현장 참석자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현지교회와 동역하기 위해 가져야 할 자세를 묻자, 조준형 선교사는 ‘마음을 식히라’는 뜻의 태국어 ‘짜이옌’을 소개하며 “태국 사람들은 급하게 서둘러 하지 않으므로, 파트너로 일하려면 선교사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빨리 얻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답했다.
김신숙 선교사는 “현지교회가 원하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살피고,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돕는 것이 진짜 파트너십”이라며 “이제 전 세계에 교회가 없는 곳은 거의 없으니, 우리가 앞서서 뛰지 말고 그 나라의 교회와 함께 어깨를 맞춰 그들의 필요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환 선교사는 “복음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복음을 보고 싶어 한다”며 “선교사가 어떻게 사는지 현지인들은 다 보고 있다”며 성육신적 선교와 삶의 선교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어 “저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바로 되는 것이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후배 선교사와 사역자들을 향한 격려의 말로 이재환 선교사는 “선교보다 좋은 일은 없다. 여러분은 선교의 길을 너무 잘 선택하셨으니, 끝까지 선택하라”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저도 선교가 태어나서 가장 잘 선택한 것이고, 다시 태어나도 선교사로 살겠다”며 “꿈꾸거나 주님이 직접 명령한 일은 없으나, 어릴 때 교회에 다니며 ‘탄일종’ 노래의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는 가사가 도전이 됐다. 이렇게 놀라운 주님이 이 땅에 오시니, 탄일종 소리를 바닷가 어부들과 산속 사람들에게도 전해야 한다는 것이 소명이었고, 그것이 저를 키웠다”고 말했다.
김신숙 선교사는 “후배 선교사님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담임목사님들이 선교를 위해 더 기도하고, 영적으로 깊이 준비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0년 선교를 마친 지금 성경을 더 많이 읽는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일을 하려면 기도와 말씀 외에 없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복음과 말씀, 기도”라며 “후배들이 정말 기도하고 말씀을 보며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와 넓이, 높이를 깨닫고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준형 선교사는 교단에서 선교사 자녀를 위한 교재가 없어 직접 만들었던 경험을 소개하며 “성경은 선교의 책이다. 성경을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내가 선교사로서 무엇을 준비하고 적용할지 해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날 고성준 목사는 “두려움과 전율, 감동이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며 “선배들이 남긴 선교 유업을 들고 더 힘차게 뛰는 한 세대가 되면 좋겠다”며 말했다. 이후 세 선교사는 다음세대를 위해 차례로 축복기도를 해주었고, 참석자들이 함께 기도하며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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