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반이 될 반도체 특별법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이 제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연구개발(R&D) 집중 환경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술격차가 좁혀지고 역전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8일 반도체 특별법을 논의했으나, 여야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쟁점은 R&D 인력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의 포함 여부다.

국민의힘은 첨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당 조항의 삽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근로기준법상 예외 규정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협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민주당은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제외한 수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6개월 이내 소관 상임위 심사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 절차를 밟게 된다. 여소야대 상황을 감안할 때 예외 조항 없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업계는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첨단 기술 확보를 위한 R&D는 몰입이 생명인데, 주 52시간제의 경직된 적용이 개발 흐름을 끊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주요 반도체 강국은 이미 대규모 정부 지원과 더불어 R&D 인력에 대한 근무시간 제한을 두지 않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대만의 TSMC는 R&D 인력에게 탄력적인 근무 환경과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며, 중국 반도체 업체들도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신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기술 추격을 받는 상황에서 돌파구 마련이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기술 개발 속도에서 밀리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제도로는 R&D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도 전날 성명을 통해 반도체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R&D 환경을 제약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현장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안현 SK하이닉스 사장은 한국공학한림원 주최 '반도체특별위원회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엔지니어가 개발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 52시간제는 흐름을 끊고 부정적인 업무 관행을 낳을 수 있다"며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주 52시간제 예외를 반도체 산업 전체에 일괄 적용하기보다, R&D가 시급한 특정 분야나 시기에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예외 조항을 모든 분야에 확대하려다 보니 법안 추진이 지체되고 있다"며 "시급성이 높은 분야에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반도체 특별법의 향방은 국내 산업의 기술 주도권 유지 여부를 가를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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