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방학 때 오사카에 놀러 가려 했더니 단체관광 외엔 아직 불가하다고 한다. 그 오사카의 유흥가 중심지인 난바에 젊은 청년이 조그만 오꼬노미야끼 가게를 개업했다. 그런데 손님이 전혀 오지 않았다. 개업한 지 며칠이 지나도 가게는 한가하기만 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손님들이 찾아올까?” 고민하던 젊은 청년은 어느 날 갑자기 자전거에 배달통을 싣고서 주변을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2]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그렇게 며칠째 계속해서 배달통을 싣고 달리는 그 젊은 청년을 보면서 사람들은 “야! 저 가게는 배달이 끊이질 않는구나. 음식이 엄청 맛있나 보구나!”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신기한 건 그때부터 손님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0년 후, 이 가게는 종업원만 600명이 넘는 일본 제일의 오꼬노미야끼집이 되었다. 그 젊은 청년이 지금의 나까이 마사쯔구 사장이다.

[3] 바쁜 척을 해서 일본에서 제일 바쁜 현실을 만들어 낸 창의적인 발상의 주인공이다(히스이 고타로, 《3초 만에 행복해지는 명언 테라피》)

살다 보면 이런 남다른 아이디어와 지혜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은 이들이 많다. 그들이 만든 음식이나 물건의 질보다 반드시 자신들이 내놓은 것을 팔겠다고 하는 의지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 중요함을 본다. 나까이 마사쯔구 사장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음식이 별로 좋지 않았어도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의지와 기발한 지혜가 그를 오늘 일본의 최고로 만든 것이다.

[4]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눅 16:8절에서 주님은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지난 학기 목회자들과 “예수님의 비유법과 설교작성법”이란 과목을 공부했다. 예수님의 비유들에서 그분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음을 모두가 절감했다.

[5]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이들은 거의 모두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란 제목으로 설교를 한다. 하지만 내가 정한 제목은 ‘의로운 청지기의 비유’이다. 이 제목으로 이 본문을 해석하거나 설교하는 이들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틀림없이 이 본문은 ‘의로운 청지기’가 예수님의 주된 포인트이다. ‘비유’란 영어로 ‘parabole’인데, 여기서 영어단어 ‘parable’이 유래했다. 이 단어의 뜻은 ‘옆에 놓다’인데, 말하려고 하는 원래의 의미를 위한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6] 예수님의 비유들에서 많은 이들이 비유 자체에 몰두해서 어떻게든 하나도 빠짐없이 그 내용을 해석하려고들 애쓰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비유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비유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원래 의미가 뭐냐가 중요한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를 비유로 드신 예수님의 의도는 “불의한 청지기도 저런 지혜가 있는데 하나님 나라의 ‘의로운 청지기들’(제자들)은 그보다 더 지혜로워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데 있다.

[7] 나까이 마사쯔구 사장의 청년 시절 창의적인 발상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별 거 없어도 자전거를 타고 밖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광고를 해대니 손님들이 몰려온 것이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가? 우리가 자랑해야 할 물건(?)은 어떤 건가? 세상 음식이나 물건과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영혼을 살리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보내는 생명의 복음 아니던가? 이렇게 소중한 영의 양식을 갖고 있으면서 왜 우리는 당당하게 밖에 나가서 광고하고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코로나의 탓이 클 것이다.

[8]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도 교회 안에 이런 생각들이 퍼져 있었다. “이제 전도의 시대는 갔어. 더 이상 밖에 나가 전도해서 사람들을 끌어오는 시대는 갔단 말야! 전도가 먹혀들던 시대는 끝났다고!” 그러다가 코로나마저 터져 버리니 더욱 전도의 시대는 진짜 가버리게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탄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불어넣어준 ‘패배의식’과 ‘패배주의’임을 알아야 한다. ‘전도의 시대가 갔다고?’ 천만에다.

[9] 지금도 영혼 구령의 열정으로 가득한 성도, 전도의 열심으로 꽉 찬 교회는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할 잃어버린 양들을 생명의 자리로 인도함을 본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다. 우리 성도들이 그런 분들이다. 심지어 절간의 주지 스님이 예수 믿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 전도가 끝난 시대는 없다. 전도가 끝났다고 착각하며 영혼을 향한 열정을 끝내버린 사람들의 시대가 있을 뿐이다.

[10] 세상의 불의한 청지기도 아직은 쫓겨나지 않고 남은 시간에 주인에게 쫓겨난 이후를 준비하는 지혜를 보였다면, 하나님의 의로운 청지기들은 얼마나 더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를 위해 준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건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갔을 때, 우리를 환영하러 맨 발로 뛰쳐나올 친구가 몇이나 될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11] 한 사람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오늘 이 시간부터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친구 삼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든지 차를 타고 나가든지 걸어서 나가든지 만나는 누구에게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가 갖고 있는 생명의 복음을 잘 전파하여 영혼구원의 네트워킹을 확장시켜나가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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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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