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백석대 채영삼 교수

꽃다운 어린 소녀들, 13세까지 어리고 앳된 아이들을 끌어다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고문을 하고 토막을 내고....어린 소녀들을 저리도 말 못하는 짐승 이하로 취급하는 저 잔학무도(殘虐無道) 한 인간성은, 단지 정죄 받고 심판 받아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그 민족과 문화 자체가, 복음과 거룩한 영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깨닫게 한다.

일본 사람들에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가 그들에게, 사람은 단지 무리를 지어 사는 원숭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일본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회복하도록, 저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저토록 잔혹한 치부와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 온, 이 땅의 소녀들, 누이들, 어머니, 할머니들의 존재를, 정부가 그토록 간단하게, 철학 없이, 역사 없이, 돈 몇 푼과 정치적 타협으로 땅에 묻으려 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독일은 자신의 역사적 범죄를 기억하고자 아우스비츠 수용소를 박물관으로 보존했다. 그 나라 총리가 폴란드의 유대인들의 묘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사죄한 것은, 인간성에 대한 위대한 회복의 신호였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뿐 아니라 독일인 자신의 민족과 역사에 대한 치유요 회복의 시작이었다.

철학과 역사 없는, 위안부 문제의 정치적 해결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돈 몇 푼, 경제 활성화 수치 얼마 가지고는 비교할 수 없는, 민족의 정신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의식 없고, 인간에 대한 철학과 예의도 없는 권력은, 결코 이 민족이나 이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민족은 정신이다. 나라는 백성이고, 정신(精神)이 없는 백성은 나라를 잃는다. 피해자의 인간됨의 진정한 회복은 가해자의 인간성 회복과도 맞물린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가 인간의 도리에 합당하게 해결될 때, 그 문제는 비로소 두 민족이 함께 더 차원 높은 인간성과 문화를 갖추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계기로 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그 아픔과 수모, 그 어린 소녀들이 겪어야 했던 지옥을 보상하는 길이다. 그 어린 소녀들의 온 몸과 마음과 인생이 파괴된 것에 대한, 작으나마 위로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위안부 소녀들의 눈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눈물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우리의 책임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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