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 13일 부터 3년간 산정현교회 주일 낮 예배 시간에 전한 김관선 목사의 마태복음 강해 요약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1:18~19)

▲김관선 목사   ©산정현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사에서 핵심은 무엇일까요? 본문은 "성령으로"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신약의 시작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첫 장에도 성령이 등장합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창1:2). 성령은 신약을 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역사 하셨을 뿐 아니라 이미 세상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사역 속에 함께 일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령으로"를 살피며 우리 가운데 역사 하시는 성령을 함께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 = 18절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20절,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①성령의 역사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처녀인 마리아의 몸을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아들은 탄생하셨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힘이 성령입니다. 두 번이나 본문은 그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셉은 단지 예수를 낳은 마리아의 남편일 뿐 그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분명한 언급을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탄생하신 것은 요셉으로 인함이 아니고 성령으로 인함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처음에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깨닫게 하시기까지 그는 그 놀라운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면 안됩니다. 인간의 교만함은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을 거부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어찌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두 다 이해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마십시오,

②그러나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이 이상의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족보에서 다윗을 비롯한 조상들이 모두 죄인임을 분명히 살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통해 아들 솔로몬을 낳은 죄인임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유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잉태되었고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21절이 핵심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의 구원자로서의 충분한 자격을 갖추신 것은 그가 성령으로 잉태된 죄를 지니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마태복음에 나타난 성령을 살펴보겠습니다.

①주님의 사역 시작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그 분이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사역 시작과 함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메시야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세례식은 주님이 그 사역을 시작한다는 선포와 같았습니다. 세례와 함께 주님의 정체가 선포되었습니다.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 그 큰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성령의 임재는 그 일을 시작하는 신호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큰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스가랴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②시험을 받기 위해 광야로 가실 때도 성령이 함께 하셨습니다.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성령은 주님의 사역의 시작부터 시험받는 그 자리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주님은 시험에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광야 같은 세상, 시험이 많은 세상에 나갈 때 성령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이 주실 가장 좋은 것은 성령입니다.

7:7-11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에서 이 "좋은 것"은 성령임을 말씀하십니다(눅11:13). 우리에게 늘 성령 충만함을 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④주님의 마지막 약속에 암시된 성령

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승천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눈앞에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함께 하시다니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약속은 성령 충만함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은 주님의 항상 함께 하심이라는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성령은 주님이 우리 곁에 늘 함께 하신다는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주님이 곁에 계심을 늘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22~23)

마태복음의 핵심 주제 중 하나가 임마누엘입니다. 23절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씀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28장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주제로 마태복음은 둘러 싸여있습니다.

구약은 임마누엘의 역사입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어떻게 함께 하셨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게 어떻게 함께 하셨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들의 고통의 현장에 찾아 내려가신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계속하여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그리고 사사시대에, 또한 왕정시대가 열리면서 왕국의 대표적인 왕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그 백성들에게 함께 하시겠다며 격려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임마누엘의 극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임마누엘의 절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인간들 속에 들어와 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함께 거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바로 그 손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어루만지셨습니다. 많은 고통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셔서 그들을 그 문제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8,9장이 특히 그런 내용을 모았습니다. 병든 자 속에 함께 하셨고 풍랑으로 고통 당하는 제자들의 배에 함께 타고 계셨을 뿐 아니라(8:23-) 풍랑으로 고통 당하는 제자들을 위해 물위를 걸어서 찾아 오셨습니다(14:25). 그 주님께서 이제 우리 가운데도 거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신 주님을 늘 느끼며 사는 것이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 임마누엘 속에 나타난 "우리" = 임마누엘에서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에 있어서 우리는 함께 하신다는 것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우리의 죄" 등 "우리"를 강조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의 삶을 가르치는 18장에서도 "우리"가 강조됩니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구할 것을 권면하셨고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도 함께 있을 것, 즉 임마누엘을 말씀하셨습니다(18:19,20). 임마누엘을 말하고 신앙하려면 "우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없이는 임마누엘도 없습니다. 나와 너가 하나되어 우리를 형성하는 그 곳에 하나님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너를 버리고 너를 밟고 너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너를 인정한 우리 속에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진정한 연합이나 하나됨은 너와 나의 개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함과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곳에 참된 연합이 있고 '우리됨'이 완성되는 것이다. 다양한 개성을 하나로 연결하고 묶어야 하는 것이다. 함께 모여 있는 '우리' 속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이 '우리' 속에 임하였습니다. 10장에서도 주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셨는데 이 때 주님은 둘씩 짝을 지어 "우리"를 만들어 보내셨습니다. 마가복음 병행구나(막6:7) 누가복음 10장의 70인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의 모습에거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은 사도행전에서도 "함께 할 줄 아는 '우리'에게 함께" 하셨습니다. 둘 씩 짝지어 사역하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 바울과 실라의 함께 하는 그곳에 함께 계시어 그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겠고 나로 말미암아 또 누군가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삶을 삽시다.

"함께 하심이라" - 이것은 천국의 특징입니다.

마태복음에서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가 천국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천국의 제자들 된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천국 비유가 많이 나오는 책이 마태복음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는데 바로 천국의 왕입니다. 진정한 천국은 무엇입니까? 천국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물질적인 것으로 오해하지 맙시다. 황금 보석 꾸민 집이 천국입니까? 그것이 천국이라면 천국은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천국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천국의 특징과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함께 계심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천국을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삶으로 묘사하였습니다(빌1:23, 살전 4:17). 그리고 천국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계시록에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계 21:3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천국을 누리는 것입니다. 천국은 외적인 부요함이나 물질적 풍요를 통해서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5장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천국이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이기고 견딜 수 있을 때 비로소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나난 자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기에 천국은 그들의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임마누엘을 체험하는 사람은 천국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누가 천국을 삽니까? 물질적 부요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늘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임마누엘을 살폈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느끼며 삽시다. "우리"를 잃지 맙시다. 함께 하시는 주님을 통해 천국을 누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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