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선교회 연구실장 손상웅 목사(풀러신학교 선교역사 전공·철학박사)

1917년 대구에 있는 신정교회(현 대구서문교회]가 남녀연합 전도회를 조직하고 유년 주일학교 지부를 횡정구에 설립할 때 교실용 3칸 초가집 구입 자금을 스위처 선교사가 헌금했다.

스위처 선교사가 했던 주택 헌금이 1922년 70세의 김금성 성도에게서도 나타났다. 어려운 생활에도 불구하고 신정교회 종각 건축 비용을 전담하던 김금성 성도가 1922년에는 목사 사택 건축에 620원을 기부하였다. 본 교회는 그 해 8월 8일 하오 9시에 동 교회당에서 직원 일동과 교인 다수가 모여 다과를 준비하고 김금성 성도를 초대하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스위처 선교사의 사랑을 입은 신정교회는 1921년에 김병선에게 일금 얼마를 기부하는 것으로 보답되었다.

위의 김병선 사건은 다음과 같았다. 길선주 목사가 기독신보에 게재한 내용에 따르면 김병선은 뜨거운 간장이 그에게 뒤집혀 일 년 동안이나 평양 기홀 병원에서 배를 열어 수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2살 된 박인창이 김병선이 입원하던 기홀 병원에 입원하였다. 평양 시외 사동 탄광 전차에 다리가 치여 넓적다리에 살이 사면 세치 가량이나 떨어져 소생할 희망이 없다는 박인창의 가련한 현상을 보고 김병선이 "나는 이미 병신 몸이 될 모양이오. 또 한 생명이 어찌될지 모르겠으니 내 살로 그 아이를 살리라"고 의사에게 간청하였다. 그리하면 그 아이는 살아나겠지만 당신은 대단히 위태롭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줄곧 간청하여 마침내 그의 살을 베어 아이에게 부쳐 그 아이가 살아나 퇴원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이 후 김병선도 병이 쾌차한 중에 있었다.

▲1938년 당시 대구 신정교회 모습.   ©자료사진=양도식(대구서문교회)

위의 소식을 들은 전국 교회가 김병선에게 기부를 하였는데 무려 150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동정금에 감격한 김병선은 "나는 부모 동생도 없는 자이외다. 지금은 병이 좀 나은 즉 아무 일을 하여서라도 내 몸이야 건사하지 못하겠습니까. 이 동정금은 내가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이 돈은 꼭 사회사업에 쓰려 하는데 어찌하여야 좋을지 지도하여 주시오"라고 하였다고 한다.

김병선은 평양부 상수구리 길선주 목사의 집에 거주하던 24세의 청년이었다. 길선주 목사만큼이나 김병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고, 김병선에 동정금을 보낸 대구 신정교회는 은혜를 사랑으로 갚는 교회라고 하겠다.

글ㅣ손상웅 목사(SEED선교회 연구실장·풀러신학교 선교역사 전공·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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