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한국구세군] 1865년 영국 동부 런던에서 출발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의 복음 선교활동은 당시 영국의 정치, 경제,종교적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성서의 권위와 엄격한 도덕적 성결 생활 등은 당시 비국교도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주었던 청교도적인 신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개인적인 체험의 강조와 남녀평등, 비 예전적 성례 등은 퀘이커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구세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메소디즘(Methodism)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윌리엄 부스 자신도 "세상의 개선을 위하여 내가 필요한 모든 판단 기준의 모든 견해는 웨슬레의 글과 교리의 정신과 실천에 따랐다"고 언급할 만큼 그는 일상을 통해서 메소디스트(Methodist)의 충실한 존경자였으며, 그 영향은 구세군 신학형성에 크게 미쳤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구세군은 1865년 최초 구세군 교리를 제정할 당시, 요한 웨슬레의 감리교 신조를 참고하여 성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는 신앙을 중심으로 '7개 신조'를 정하였습니다. 그 후 구원의 신앙 안에 성결의 교리를 추가하여 11개 신조로 확정하고 문자적으로 다듬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11개 교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구세군신학은 첫째, 성서의 전적인 우선권과 권위를 강조하는 성서중심의 복음주의 신학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세군은 복음주의적 교단이며, 성서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실천한다."는 '구세군 선교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권위를 강조는 하지만 근본주의와 같이 협소한 성서 문자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성서 기자들의 의식구조, 사고방식, 기질, 관심, 글 쓰는 습관, 문체의 특징 등에 완벽하게 적응 시킨 것임을 확신 하고 있습니다.

둘째,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는 종교개혁적 전통에 서 있는 구세군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이며 그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구원신학을 그 중심에 두고 가르치며 선교합니다. 그러나 구세군의 구원신학은 칼빈주의와 구별되는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이며, 자유적인인 알미니안주의 와는 차별되는 웨슬리안주의(Wesleyanism)를 표방합니다. 곧 구원신학에 있어서는 웨슬레안-알미니안주의적 입장에 서 있습니다.

셋째, 종교개혁자들이 구원을 전함에 있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다는 의인(Justification)의 교리를 강조하였다면 웨슬레와 윌리엄 부스는 의인보다 성결(Sanctification)신앙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세군의 사회봉사는 이러한 성결신학에 바탕을 두고 발전되었습니다.

넷째, 구세군의 중심적 신학이라 할 수 있는 구원과 성결신학의 실천으로서 복음전도와 사회적 관심은 배타적으로 보지 않고 상호 존중하는 입장의 통합적 선교신학은 구세군 신학의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1974년 스위스 로쟌 언약에서 분명하게 밝힌 대로 "교회의 희생적인 봉사와 선교에 있어 복음전도는 최우선적이다."라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명령은 복음전도와 사회봉사를 포함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구조 악으로부터의 해방과 인간화 운동에 앞서 보다 근원적인 죄악에서의 구원을 위한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견지하며 여기에 사회봉사가 뒤 따라야 한다는 것이 구세군의 통합적인 선교신학입니다.

[출처] [구세군 이야기] 일곱 번째 이야기|작성자 한국구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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