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과 디지털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시대 속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른바 ‘굿즈(goods)’ 소비 열풍은 더욱 커지고 있다. K-POP 팬덤 문화에서 시작된 굿즈 소비가 이제는 종교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면서 ‘기독교 굿즈’의 가능성과 의미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 5월 20일 서울 마포구 신촌 필름포럼에서 열린 제23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시네포럼에서도 조명됐다. 이날 포럼은 문화선교연구원과 한국문화신학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공동 주최했으며, AI 시대 속 종교와 문화, 인간 감각의 관계를 다양한 시선으로 분석했다.
발표자로 나선 이민형 교수(성결대)는 ‘여전히 유효한 아날로그의 감성’을 주제로 종교 굿즈와 젊은 세대의 감각적 종교 경험에 대해 발표했다.
이 교수는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영화관에서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며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 자체는 완전히 디지털화될 수 없다”며 “디지털 시대일수록 오히려 물성과 아날로그 감성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종교 굿즈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도 종교에 대한 관심은 감소하고 있지만, 종교적 상징과 메시지를 담은 굿즈는 새로운 문화 소비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불교·천주교 이어 개신교도 굿즈 시장 주목
이 교수는 한국의 굿즈 문화가 원래 K-POP 팬덤을 중심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특정 가수나 그룹을 상징하는 물건을 소유하며 팬덤 정체성을 형성하던 문화가 이제는 종교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열쇠고리와 키링, 스티커, 에코백, 머그컵, 향, 팔찌 등 일상적인 물건에 종교적 상징과 메시지를 담아 재해석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불교 굿즈의 인기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과거 불교가 기성세대 중심의 전통 종교 이미지로 인식됐다면, 최근에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굿즈 문화를 통해 젊은 층 사이에서 ‘힙한 문화’로 재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 굿즈 열풍 이후 천주교 역시 성물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굿즈를 선보이고 있으며, 개신교 또한 기존의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굿즈 시장에 조금씩 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신교 내부에서는 여전히 특정 물건을 통해 신앙심을 표현하는 행위에 대해 ‘우상숭배’ 우려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교수는 종교 굿즈가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종교적 경험과 감각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종교 굿즈는 단순 소비 아닌 의례적 경험”
이 교수는 사람들이 종교 굿즈를 단순히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공간에 두고 반복적으로 바라보며 종교적 의미를 떠올린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감정을 투영하고 성찰하게 되며, 일상 속에서 종교적 경험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 굿즈를 소유하는 행위는 성과 속의 경계를 만들어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의례적 경험이 될 수 있다”며 “굿즈를 통해 사람들은 삶의 방향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종교 굿즈가 인간의 감각과 신앙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은 굿즈를 직접 만지고 바라보며 초월적 의미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그 안에 자신의 고통과 질문, 위로를 담아낸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 활동은 단순한 인지 활동이 아니라 감각과 경험을 포함한 유기적 활동”이라며 “종교 굿즈는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종교적 의식을 일깨우는 매개체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세대의 종교 굿즈 소비 증가는 기존의 추상적이고 개념 중심이었던 종교 이해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제 종교는 설명보다 경험과 체험 중심으로 접근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신교 굿즈에 필요한 것은 ‘미학과 감각’
이 교수는 특히 개신교 굿즈 문화의 한계도 지적했다. 현재 개신교 굿즈는 종교 내부에서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고, 디자인과 미감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개신교 굿즈는 유난히 키치한 느낌이 강하고 정통 미학과 아름다움의 감각이 부족하다”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종교적 경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종교 굿즈는 단순히 개종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종교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다”며 “특히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BNR)’ 성향을 가진 젊은 층에게 종교가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AI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은 여전히 손과 발, 후각과 미각을 가진 존재”라며 “기술의 시대 속에서도 아날로그 물성과 감각은 종교적 경험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송용섭 교수(서울기독대)가 ‘AI와 완벽으로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을, 김지혜 책임연구원(문화선교연구원)이 ‘AI 슬롭이 유행인 시대의 아름다움’을 각각 발표하며 AI 시대 속 종교와 문화, 인간 감각의 의미를 함께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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