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말론 드 블라시오 작가의 기고글인 ‘왜 하나님을 ‘부활 vs 자연주의: 왜 단순한 추측은 반박이 될 수 없는가’(The Resurrection vs naturalism: Why speculation isn’t a defeater)를 2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블라시오 작가는 문화 옹호자, 기독교 작가, 그리고 '문화를 분별하다'(Discerning Culture)의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기독교 신앙이 믿음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시대를 초월한 진리다. 필자가 회의적인 이들과 기독교 신앙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긴장은 언제나 자연주의가 제시하는 미묘하면서도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요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사상가들은 인간이 하나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철학, 성경, 역사적 탐구, 경험, 심지어 과학까지 활용해 왔다. 물론 이성적인 기독교 사유 역시 궁극적으로는 믿음에 기초하지만, 그것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이해를 수반한 지적인 믿음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사건이며, 동시에 그것이 참이라면 다른 종교들의 주장 역시 거짓이 됨을 의미한다. 필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는 믿음 안에서 기독교인이 누리는 ‘복된 확신(blessed assurance)’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성경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라고 정의한다. 믿음의 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리스도를 경험한 신자의 확신은 결코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신자는 은혜의 초청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이해하고, 의식적으로 그 은혜에 응답함으로써 비신앙의 상태에서 신앙의 상태로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린도후서 5:17-18)라고 기록했다. 복음의 메시지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지성과 경험 속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져 왔다.
기독교 신앙이 근거 없다는 비판은 실제로 입증된 적이 없다.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시각이 크게 변화한 시점은 19세기 독일 성서비평학이 영미권 학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였다. 역사학자 다니엘 K. 윌리엄스는 그의 저서 『합리적 신앙을 향한 탐구(The Search for a Rational Faith)』에서 독일의 회의주의가 복음서의 기적 사건들을 철저히 분석하며 결국 그것들을 예수 사후 수십 년 동안 형성된 전설로 결론지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이론적 접근은 여러 개신교 교단과 대학에 영향을 미쳐 신학의 자유주의화와 기독교 신앙의 약화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실제로 부활 신앙을 무너뜨릴 만한 결정적인 반증은 무엇인가? 어떤 확정적 증거가 부활을 부정하는가? 자연주의적 전제는 복음서의 기록이 예수 이후 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가정을 제시한다. 그 결과 부활의 증인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 저자들이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내용을 추가했다는 주장, 예언 성취가 의도적으로 삽입되었다는 주장, 예수의 시신이 도난당했다는 주장, 각종 음모론 등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결정적 반증(defeater)이 될 수 없다.
반대로 자연주의 역시 충분히 검증 가능한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연주의는 물질적 세계 안에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객관적인 도덕 기준이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또한 양심, 정의에 대한 보편적 감각, 사랑과 용서에 대한 인간의 깊은 갈망이 단순한 물질 과정에서 비롯되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아마도”, “가능성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와 같은 가설적 표현은 실제 반증으로 인정될 수 없다. 자연주의가 진정한 반증이 되려면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성경 저자들이 조직적으로 공모했다는 증거 역시 발견된 적이 없다. 만일 1,600년에 걸쳐 성경의 내용이 인위적으로 조작되었다면, 후대에게 그 허구를 유지하도록 지시하는 기록이 어딘가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세대가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만남을 경험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회의론자들은 다른 종교 역시 종교적 경험을 주장한다고 말한다. 물론 사람들은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면, 하나님과의 화해를 경험하는 기독교 신앙의 진리는 다른 종교적 주장들을 무너뜨리게 된다.
결정적인 반증이 없는 상황에서, 기독교인이 신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은혜의 경험을 통해 ‘복된 확신’을 누리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2,000년 동안 기독교인의 경험은 바울의 고백과 일치해 왔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칭의의 믿음은 역사 속에서 신자들의 삶에 분명한 흔적을 남겨 왔다.
회의적인 주장들이 아무리 반복된다 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신앙의 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11:25-26)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갈라디아서 4:6). 결국 신자는 살아 계신 구주를 믿는 믿음이 성경의 약속과 정확히 일치함을 지성과 경험 속에서 확신하게 된다.
1873년, 서구 사회가 근대 사상의 영향으로 크게 변화하던 시기에 찬송가 작가 패니 크로스비는 “복된 확신, 예수는 나의 것!”이라는 가사를 남겼다. 이 고백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히브리서 10:22-23)라는 말씀과 연결된다. 인간의 이성은 예수에 관한 많은 성경 기록을 이해하려 하지만, 부활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이 가장 큰 논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회의론자 역시 사랑의 대상이며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성과 경험 속에서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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