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디나 다이 박사의 기고글인 ‘이스라엘과 교회의 참된 관계는 ‘대체’가 아니라 ‘성취’가 보여준다‘(Why fulfillment, not replacement, tells the true story of Israel and the Church)를 2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디나 다이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신자로서, 고대 근동 세계와 출애굽의 구조적 패턴, 성전 신학, 그리고 신약성경의 유대적 기초를 연구하는 성경학자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이스라엘, 교회, 그리고 성경 예언을 둘러싼 논쟁이 복음주의 진영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오늘날, 특히 반유대주의가 증가하고 세계적 불안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약성경은 실제로 이스라엘의 이야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는 종종 ‘옛 언약 대 새 언약’이라는 구도로 이해되어 왔다. 이 관점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며, 하나님의 언약 계획이 이스라엘의 신실함 여부에 달려 있었고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언약이 다른 민족에게 이전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전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신약성경을 히브리 성경의 뿌리로부터 분리시키는 신학적 흐름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스라엘이 버려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사명이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한 분의 신실한 대표 안에서 구현된다. 유대인 메시아 예수(예슈아)는 이스라엘을 대체하기 위해 외부에서 등장한 분이 아니라, 이스라엘 이야기의 중심 속에서 그 절정을 이루시는 분이다. 그분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완성되고, 그 복은 모든 민족에게로 확장된다.
초기 제자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이스라엘의 회복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았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기존 신앙에서 분리된 집단이 아니라 시내산 공동체가 새로운 창조의 현실 속으로 확장된 모습이었다. 제사장 나라와 열방의 빛이 되라는 이스라엘의 사명은 취소된 것이 아니라 더욱 넓어졌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히브리 성경과 절기, 성전 구조, 언약 이야기의 틀 안에서 복음을 해석한다. 마태복음은 모세오경을 연상시키는 다섯 개의 주요 설교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는 분으로 묘사하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고 선언한다. 누가는 오순절 사건을 언약 갱신과 첫 열매를 기념하는 절기인 오순절(샤부옷)과 연결한다. 요한계시록은 성전 이미지와 출애굽의 구조, 예언적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방적 발명이 아니라 구약에 깊이 뿌리를 둔 유대적 메시아 선언이다.
신약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대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약속의 연속성을 보게 된다.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이라는 거룩한 공간을 돌보도록 맡기셨다.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다. 이 창조 명령은 인간이 하나님의 질서를 온 세상에 확장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보여 준다. 에덴에서의 추방과 홍수 이후 이 사명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으로 이어진다. 그 약속은 열두 지파와 언약 공동체, 다윗 왕조를 거쳐 결국 이스라엘의 사명을 이루는 종에게로 이어진다. 그 흐름은 언제나 하나님 나라가 온 땅에 확장되는 방향을 가리켜 왔다.
메시아 예수 안에서 이 부르심은 끝나지 않고 확장된다. 먼저 유대인에게, 그리고 이방인에게까지 이어진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약속은 이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이야기에 참여함으로써 확장된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함께 하늘 나라를 세상 끝까지 확장하도록 부름받는다. 이 움직임은 대체가 아니라 회복이다.
이러한 대표성의 개념은 성경 전체에 깊이 나타난다. 에스겔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상징적으로 짊어진 표징이 되었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며 동시에 열방의 빛이 되는 종을 말한다. 요한복음 11장에서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민족 전체가 멸망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며 대표성의 개념을 드러낸다. 요한은 이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로 모으시는 사건으로 해석한다.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대표한다는 개념이다. 이것은 대체가 아니라 대표이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선택된 대표들을 통해 일하신다. 그들이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언약의 사명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의로워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언약을 어길 경우 심각한 결과가 따른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이를 분명히 설명한다. 이방인은 이스라엘의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존재이지 새로운 나무가 아니다. 뿌리는 여전히 족장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기존 가지를 대신한 것처럼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비유는 하나의 언약 이야기 안에서의 연속성을 전제로 한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삶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여정을 다시 따라가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이스라엘이 바다를 통과했듯 예수는 요단강을 통과하셨고,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에 있었듯 예수는 40일 금식하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렸듯 예수는 세례 때 사랑받는 아들이라고 선포되었다. 이스라엘이 산에서 율법을 받았듯 예수는 산에 올라 권위 있게 가르치셨다. 예수는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분이 아니라 이스라엘 이야기 안에서 그 사명을 완성하는 분이다. 성취는 대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토라와 성전, 출애굽의 패턴 속에서 형성된 유대인 신자로서 신약성경을 읽을 때, 그것을 이방인의 종교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으로 이해하게 된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약속과 모세의 중보 사역, 다윗의 왕권, 종의 순종을 구현하신다. 그분의 죽음은 유월절 언어로 설명되고, 부활은 동산의 이미지 속에서 전개된다.
예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실 때, 전혀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를 새롭게 세우시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 신자들은 이를 이해했다. 그들은 성전에서 예배했고 절기를 지켰으며 자신들을 이스라엘 회복 이야기의 일부로 여겼다.
마태복음 마지막 장에서 부활하신 메시아는 온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을 주신다. 이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떠올리게 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이 복을 얻도록 부름받았고, 이제 약속된 씨이신 메시아가 제자들을 열방으로 보내신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약속은 이제 새롭게 형성된 공동체를 통해 온 세상으로 확장된다.
만약 이스라엘이 대체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언약은 조건적이며 다른 대상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성취를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세우시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은 동일하게 메시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이다. 그분의 약속은 완성된다.
이것은 대체가 아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부르심이 충만하게 이루어지고 유대인 메시아를 통해 온 세상으로 확장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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