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장은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다. 58절 중 골리앗이라는 이름은 4절과 23절에 한 번씩, 딱 두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이름이 너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골리앗’ 하면 거인이나 장애물의 화신이 되었다. 반면에 다윗은 어린 소년,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다. 승리의 비결이 뭘까?
골리앗, 어마어마한 거인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4절), 한 규빗이 사람의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니까 대체로 45~50cm, 그렇다면 거의 3m 정도의 거인이다. 기네스북 역대 공식 최장신 로버트 워들로우(Robert Wadlow)의 272cm보다 한참 더 큰 비공인 역대 세계 최장신이다. 키만 큰 게 아니라 힘도 셌다. 갑옷의 무게가 놋 5천 세겔, 1세겔이 11.4g이니까 57kg이고, 창날 무게만 철 6백 세겔, 거의 7kg에 가까우니 맞짱 뜨다가는 뼈도 못 추릴 정도로 보면 된다(5-7절).
1:1 싸움으로부터 시작되는 고대 전투, 다윗이 골리앗과 맞짱을 뜬다. 블레셋과 이스라엘간에 벌어진 싸움의 절정이다. 성경은 골리앗을 ‘싸움을 돋우는 자’(4절)라 했다.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어온 골리앗, 영어 번역본에서는 ‘champion’이라 번역했다. 넘을 수 없는 태산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그런 어마무시한 거인이 40일 조석으로 연속 시위를 한다(16절). 위세에 눌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다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싸울만한 사람이 총동원된 엘라 골짜기였지만 누구 하나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사울 왕도 거기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목 하나가 더 컸던 사울, 위풍당당한 체구였으나 골리앗 앞에선 초라할 뿐, 완전 겁먹은 왕일 뿐이다. 모두가 다 두려워서 숨었다. 조호진 목사의 『기다림과 자기부인의 다윗 영성』이라는 책에 보면 이 부분을 ‘조롱당하는 이스라엘, 키만 크고 정신머리 없는 얼간이들’이라고 소제목을 붙였다. 이스라엘은 완전 무정부 상태, 모든 것이 와해(瓦解) 되었다. 군주제로 강한 나라 만들어보려던 계획은 완전 수포로 돌아간 것 같다.
골리앗은 연일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속수무책(束手無策), 그저 조롱당하고 있을 뿐이다.
신기한 것은 골리앗이 이스라엘 백성을 단 한 명이라도 죽였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기록대로라면 40일 동안 폼만 잡다가 다윗의 물맷돌 단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 골리앗 입장에서는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골리앗은 강하고 두려운 존재를 상징하는 허상과 같다. 우리 앞에 닥친 문제나 맞서야 할 대상이 강할 때 우리는 상대를 골리앗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문젯거리가 산처럼 커 보이고 우리는 그 앞에 서 있는 생쥐처럼 느껴져 지레 겁을 먹는다.
성경은 마귀를 ‘우는 사자’ 같다고 했다(벧전5:8). 먹잇감을 찾아 울부짖는 사자라는 뜻이지만 좀 다른 각도로 ‘날뛰는 사자’라고 하지 않고 ‘우는 사자’라 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면 이 표현은 우리에 갇혀 울부짖는 사자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그냥 허깨비라는 것, 실제로는 해를 끼치지도 못하는데 지레 겁을 먹는 것으로 보면 된다. 우리가 접하는 기후 재앙이나 전쟁 등도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믿음이 최고의 무기임을 알아야 한다.
다윗, 어린 소년에 불과하다
16~7세 정도의 어린 소년,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이다. 어려서 그런지, 모자라서 그런지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날도 전쟁에 나간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 세 형들에게 볶은 곡식과 떡 덩이를 가져다주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배달을 간 것이다.
아버지는 다윗을 의심했는지 형들의 대장인 천부장에게도 치즈를 주고 증표를 가져오라고 했다(18절). 큰형 엘리압은 전선에서 얼쩡거리는 다윗을 향해 전쟁 구경왔냐며 화를 낸다(28절). 그냥 걱정이 아니라 까불지말고 가라는 것, 키 큰 얼간이 주제에 다윗을 완전 무시한다.
더 이상한 건 사울 왕의 처사이다. 어린 소년에게 자기 군복과 투구를 입혀서 골리앗의 상대로 내보낸다(38절). 말이 되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지 않나? 물론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까 이렇게 어린 소년도 용감하게 싸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수는 있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그의 머리를 가져온다. 완전 뜻밖의 승리다. 그리고 그때 사울이 다윗이 누구인지, 누구의 아들인지를 묻는다(58절). 수금 타던 다윗을 몰랐다는 것은 기록 순서상의 문제로 보면 될 것 같고, 사울 왕이 “도대체 너는 누구니?”라고 묻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 같다.
여하튼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의 표현처럼 ‘동화 같은 스토리’ 아닌가? 구박받고 무시당하던 막내가 형들을 위기에서 구할 뿐만 아니라, 공주를 얻고 나라의 절반을 얻는 스토리, 우리가 즐겨 읽었던 동화와 다를 바 없다. 실제 사울이 내걸었던 포상 내역이 그랬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25절).
부마가 되는 것, 승리하면 대박이다. 한 방에 인생 역전을 이룰 절호의 찬스, 즐겨 읽던 동화와 똑같다. 그러나 이건 성공한 후에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 것일 뿐 실제 역사나 인생은 비약이 없다. 역사는 치열하고 긴박하게 진행되며 준비된 자를 통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쳤다. 몇 가지 승리의 비결이 있었다. 첫째는 ‘분노’였다.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26절). 다들 두려워했지만 다윗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이 분노는 간절함, 이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다는 강렬한 저항이다. 이 분노가 싸우게 했고, 이 분노가 이기게 한 것이다.
둘째는 ‘경험’이었다. 다윗은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맹수와 싸우고 거기서 이긴 경험들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감을 갖게 된 것, 이기는 자의 습관이 중요했다.
그리고 셋째는 ‘주무기 활용’이었다. 왕이 입혀준 갑옷과 투구, 그리고 채워준 칼은 가문의 영광이고 자랑이었지만 다윗에게는 불편할 뿐이었다. 다윗은 그 무기들을 다 벗고 양치기 복장으로 무장했다. 늘 들고 다니던 막대기를 들고 엘라 골짜기에서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었다. 그저 평소 복장에 수없이 연습이 된 무기, 물맷돌을 장착한 것이다.
그리고 완전 무장한 거인 골리앗을 향해 돌진했다. 기습 공격, 다윗은 거들먹거리는 골리앗의 행동이 느린 것을 간파하고 속도전을 펼쳤다.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49절).
순식간에 물맷돌이 이마에 박혔다.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맞힌 게 아니라 박혔다고 했다. 골리앗은 쓰러졌고, 다윗은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골리앗을 밟고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자른다(51절). 이겼다. 사람들은 ‘뜻밖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다윗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승리의 비결은 만군의 여호와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의 결정적인 비결이 따로 있음을 안다. 하나님이시다. 돌이켜 보면 모두가 골리앗에 사로잡혀 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사로잡혀 있었다. 모두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압도당할 때 다윗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엘리압은 다윗을 호랑이 같은 골리앗에게 대드는 하룻강아지 취급했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대드는 하룻강아지로 봤다. 다윗이 외쳤던 것을 보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45절).
‘만군의 여호와’, 히브리어로 ‘여호와 체바오트’(Jehova Sebaot),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승리를 확신했다. 그래서 물매를 손에 쥐고 운명의 골짜기로 내려가며 영적 선언문(spiritual statement)을 낭독했다.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46절), 얼마나 멋진 선언인가? 승리를 확신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7절). 다윗은 거인 골리앗이 아니라 자기와 함께 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을 본 것이다. 시편 3:6에서 “천만인이 나를 둘러 진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노래했던 그대로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기름을 붓고 감추어 두셨던 왕이 될 남자 다윗을 드디어 공개적 인물로 우뚝 세우신다. 승리의 전설이 되고, 이스라엘 최고의 영웅이 되게 하신다. 은혜다. 다윗이 이렇게 서게 된 비결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이었다. 하나님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시는 분이다. 어려운 시대이지만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불러들이는 마법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게 승리의 비결이다.
인천신기중앙교회 담임 이희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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