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는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였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쌓인 우정은 단단했고, 서로의 존재는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으로 균열을 맞는다. A는 B의 오빠에게 B와 함께 과외를 받으며 조용한 동경을 품게 된다. 그것은 말로 꺼내지 못한 첫사랑이었고,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 무렵,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군 입대를 불과 두 주 앞둔 B의 오빠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 앞에서 A와 B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무너진다. B는 오빠를 편애해온 엄마와, 오빠를 거절한 오빠의 연인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분노에 매달린다. A는 고백하지 못한 마음을 죄처럼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이 죽음은 두 사람 모두에게 설명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이후의 삶을 조용히 지배한다.
아주 훗날, 진실은 드러난다. 오빠는 남성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호모)이었고, 아버지의 강요 속에서 평생 자신을 부정하며 남자로 살아왔다. 죽음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와 가족이 강요한 삶의 결과였다. B는 그 사실을 오빠의 연인을 통해 알게 되지만, 이미 분노와 슬픔은 굳어버린 뒤였다.
대학 시절, A와 B는 같은 학교에서 다시 만난다. 사진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를 사이에 두고, 이번에는 우정이 사랑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A가 먼저 선배를 좋아했지만, B는 그를 따라 이 학교에 들어왔을 만큼 집요했다. 결국 A는 물러나고, 선배는 흔들리지만 끝내 B를 선택하지 않는다. 사랑은 모두를 상처 입힌 채 끝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우정은 회복되지 않은 채 경쟁의 그림자를 달고 이어진다.
성인이 된 후, A와 B는 영화사에서 다시 재회한다. PD로서 같은 프로젝트를 맡으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과거의 상처는 현재의 갈등으로 되살아난다. 대학 시절의 그 선배를 촬영감독으로 다시 만나면서, 사랑과 경쟁은 또다시 반복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A가 선배를 거절하고, B는 선배에게 매달린다. 관계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상처의 구조는 달라지지 않는다.
시간은 두 사람을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B는 영화사를 차려 성공하지만, 가족은 붕괴되고, 결혼도 실패한다. A는 영화계를 떠나 드라마 작가로 자리 잡는다. 성공의 모양은 달랐지만, 둘 다 고독했다. 그리고 어느 날, B는 말기 암 선고를 받는다. 남은 시간은 3개월. B는 A에게 스위스로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한다. 조력사를 통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고백과 함께.
이 마지막 선택 앞에서, 드라마는 사랑과 우정, 죽음의 의미를 정면으로 묻는다. 평론가들이 지적하듯, 이 작품은 “우정을 미화하지 않고, 사랑을 구원으로 그리지 않는다”(SCMP). 오히려 관계는 서로를 살리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파괴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한 평론은 이 드라마를 두고 “경쟁과 질투가 제거된 뒤에야 비로소 우정의 실체가 드러난다”고 평했다. 죽음 앞에서야 A와 B는 서로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어색하지만 화해를 원한다.
그래서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화해라기보다, 함께 견디는 시간에 가깝다. A는 죽음을 선택하는 B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B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또 다른 평론가의 말처럼, “이 드라마의 핵심은 선택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끝까지 곁에 남는 태도”라는 말이다.
A와 B의 이야기는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다. 인생이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인생에서 사랑과 우정을 덜어내면 무엇이 남는가. 인간은 사랑할 수 있을 때 살아갈 힘을 얻고, 사랑할 수 없을 때 급격히 나약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사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주고, 상처받으면서도 다시 사랑을 선택한다.
우정 역시 그렇다. 우정은 사랑 못지않게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진정한 우정은 결코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굴곡, 경쟁과 오해를 통과해야 비로소 남는다. 짧은 동행이 아니라 긴 여정을 함께 견디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죽음’을 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B의 오빠의 죽음은 개인의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그 정체성을 부정한 사회의 폭력에서 비롯되었다. B의 어머니의 죽음 또한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죄책감의 무게로 읽힌다. 그리고 B가 선택한 조력사는 죽음 앞에서조차 자기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마지막 선택처럼 보인다. 그것은 도피라기보다, 끝내 모든 관계와 화해하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은중(A)과 상연(B)의 삶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사랑은 삶을 흔들지만 영원하지 않고, 우정은 왜곡될지언정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죽음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남은 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곁에 있었는가. 《은중과 상연》은 그 질문을 쉽게 거두지 않는다. 오래, 그리고 깊게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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