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사태와 기독교 세계관의 평화 윤리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행동, 특히 마두로 대통령 체포를 목표로 한 무력 개입 논란은 단순한 외교·군사적 사건을 넘어 오늘날 세계 질서의 근본을 묻는다. 이 사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포위 압박과 함께,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과 영향권을 앞세워 국제 규범을 선택적으로 해석하는 현대 패권주의의 노골적 귀환을 보여준다.
역사는 이러한 장면을 반복적으로 증언해 왔다. 로마 제국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이름으로 평화를 선전했지만, 그 평화는 군단의 폭력과 정복 위에 세워진 질서였다. 제국의 안정은 중심부의 번영을 보장했으나, 주변부에는 착취와 억압이 일상이었다. 십자군 전쟁은 신앙이라는 절대적 명분이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결합될 때 얼마나 참혹한 문명 파괴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성지 회복이라는 구호 아래 자행된 학살은 하나님을 증언하기보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죽이는 역설을 남겼다.
근대 제국주의는 한 단계 더 정교해졌다. 유럽 열강은 ‘문명화 사명’과 ‘진보’라는 언어로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했다. 철도와 학교, 법률을 들이밀며 은폐된 폭력은 구조화되었고, 약소국의 주권은 계몽의 이름으로 박탈되었다. 20세기 히틀러의 제3제국은 이러한 제국적 사고가 극단화된 사례였다. 질서와 민족, 안전이라는 명분은 대량학살과 전면전을 정당화했고, 세계는 그 대가를 피로 치렀다. 냉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반된 이념은 실제로는 영향권 경쟁으로 작동했고, 수많은 지역 분쟁과 희생을 낳았다.
오늘의 베네수엘라 사태를 바라보는 문명비평가들의 시선은 이 역사적 연속성 위에 서 있다. 노엄 촘스키는 이를 민주주의 언어로 포장된 신제국주의라 부르며, 강대국의 폭력은 상대가 누구든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지적한다. 조지프 나이는 군사력 중심의 해결 방식이 오히려 국제적 신뢰와 도덕적 정당성을 소진시킨다고 경고한다. 헌팅턴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는 문명 간 충돌 이전에 문명 내부의 자기 절제 상실이 만들어낸 위기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특정 국가의 일탈에 있지 않다. 미국, 러시아, 중국 모두 같은 힘의 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국제법은 선택지가 되고, 약소국의 주권은 협상의 대상이 된다. 세계는 다시금 ‘힘이 곧 정의’라는 오래된 사고로 미끄러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침묵할 수 없다. 성경은 제국의 질서를 하나님의 질서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권력을 향한 열망을 거부하시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복음 18:36)고 선언하셨다. 또한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는 말씀은 폭력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선지자들은 군사력과 동맹에 의존하는 국가를 향해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말라”(시편 20:7)고 외쳤다.
기독교적 평화는 현실 도피적 이상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책임과 회개를 요구하는 급진적 윤리다. 사도 바울이 말한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에베소서 6:12)은 개인을 넘어 구조적 폭력을 가리킨다. 국가는 하나님 앞에서 상대적 존재이며, 어떤 패권도 절대선이 될 수 없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다니엘 4:17)는 고백은 오늘의 국제정치에도 유효하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우리는 또 하나의 제국적 질서를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힘의 논리를 넘어서는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평화는 군사적 승리의 부산물이 아니라, 힘을 내려놓을 용기에서 시작된다.
문명은 언제나 힘으로 세워졌지만, 오래 살아남은 문명은 힘을 절제할 줄 알았던 문명이었다. 지금 세계는 다시 묻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로부터 배울 것인가. 교회와 신앙인은 이 질문 앞에서 중립일 수 없다. 침묵은 방관이며, 방관은 또 다른 폭력이다. 지금이야말로 힘의 질서에 맞서 평화의 언어를 회복해야 할 때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