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세상은 갈수록 빛의 속도로 흘러간다. 사람들은 마치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살아간다. 정해진 리듬에 맞춰 기계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을 잃어간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은 점점 사라진다. 자기 인식은 흐려지고, 정체성은 희미해진다. 개인만이 아니다. 국제 질서도, 세계 경제도 방향을 잃은 채 그저 흘러간다.

우리는 새해를 맞았다. 또 하나의 길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이 길이 내가 선택한 길인지, 아니면 떠밀려 가는 길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이는 많지 않다. 의도적으로 걷고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어제 가던 길을 오늘도 걷는다. 이유를 묻지 않는 삶, 목적을 점검하지 않는 인생. 이것이 21세기 4분의 1을 지나온 우리의 초상일지도 모른다.

최근 한 편의 영화가 이런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했다. *The Life of Chuck(척의 일생)*이다.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이 스티븐 킹의 단편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인생을 역순으로 풀어낸다. 종말의 세계에서 시작해, 자유로운 춤의 순간을 지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문구는 한 개인의 삶이 곧 하나의 우주였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말한다. 인간은 우주 안에서 점 같은 존재이지만, 그 점 하나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순간의 기쁨, 소소한 행복, 억눌렸던 욕망의 해방이 인생을 만든다고. 척은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살아왔지만, 39세에 불치병으로 생을 마친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참고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기쁨만으로 삶의 방향이 세워질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영화가 있다. 한국영화 *신의 악단*이다. 김형협 감독의 이 작품은 북한이라는 극단적 현실 속에서 시작한다.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조직된 ‘가짜 찬양단’. 출발은 거짓이었지만,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은 점점 진짜 의미를 발견해 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가짜에서 진짜로 변해가는 인간의 내면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씨네21은 이 영화를 “가짜 찬양단의 진짜 목적은 <신의 악단>”이라 평하며, 종교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서사를 과도하게 확장하지 않고, 신앙의 힘과 내면의 변화에 집중한 점을 높이 보았다. M픽과 MHN 역시 “전반부는 쫄깃함, 후반부는 따뜻함”이라며, 긴장과 회복이 조화된 서사적 리듬을 주목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 인물들이 오늘날의 ‘세례 요한’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 탈북자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안전보다 진리를 택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더 큰 타자를 증언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은 떠밀려 살지 않는다. 선택하며 산다. 광야 같은 현실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과 방향을 잃지 않는다.

20세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신약성서의 세례 요한 역시 그러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고, 동시에 자신이 누구가 아닌지도 명확히 말했다. 철학자 폴 리쾨르는 요한을 ‘타자성’을 통해 자아를 완성한 인물로 보았다. 키에르케고르는 그를 절대자를 증언함으로써 자기 실존의 의미를 찾은 사람으로 해석했다. 요한의 삶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베다니라는 자리에 분명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새해 아침,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주 속 점 같은 존재로서 순간의 만족만을 좇으며 흘러갈 것인가, 아니면 세례 요한과 오늘의 북향민 신앙인들처럼 자기 자리, 자기 베다니에 서서 살아갈 것인가. 강물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갈 것인가, 목표를 향해 거슬러 오르는 숭어처럼 살아갈 것인가.

새해는 달력이 아니라 질문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나의 베다니는 어디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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