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크리스토퍼 베넥 목사의 기고글인 ‘교회 지도자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What church leaders get wrong about artificial intelligence)를 2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크리스토퍼 베넥 목사는 신기술과 신학 분야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다. 현재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한 퍼스트 마이애미 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The CoCreators Network의 CEO이자 인공지능(AI) 분야의 대표적 성직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그는 크리스천 트랜스휴머니스트 협회의 창립 의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인공지능을 불안과 무관심이 뒤섞인 태도로 바라본다. 어떤 이들은 AI를 인간성을 약화시키고 목회적 현존을 대체할 비인간적 힘으로 두려워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그것을 이메일이나 빔프로젝터, 라이브스트리밍 소프트웨어와 다르지 않은 ‘중립적 도구’로 치부한다. 두 반응 모두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둘 다 불완전하다.
공통된 오해는 인공지능이 교회 삶의 ‘주변부’에 머물 것이라는 전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AI는 이미 인간 일상의 중심부로 들어와 있다. 인공지능은 교회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성도들의 삶을 형성하고 있다.
월요일 아침 첫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AI는 이미 한 성도의 세계를 중재하고 있다. 한 십대는 알고리즘이 선별해 준 피드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구직자의 이력서는 사람의 눈에 닿기도 전에 자동 필터링을 거친다. 교회 지도자는 난감한 이메일을 기계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다. 어떤 교인은 목회자에게 묻기 두려운 질문을 챗봇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사람들은 한 주간의 ‘형성’을 안고 예배당에 들어온다. 피드가 만들어 낸 불안, 추천 알고리즘이 미묘하게 유도한 선택, 거의 인식하지 못했지만 끊임없이 신뢰해 온 시스템들이 빚어낸 질문들이 모든 것을 짊어진 채로 말이다.
이 현실은 첫 번째 오해를 드러낸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AI를 단지 ‘도구 문제’로 다룬다. 도구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켜 우리가 의도한 일을 더 잘 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점점 인간의 판단 자체를 형성하고 있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선택할지를 기술이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형성적’이다. 그리고 인간을 형성하는 모든 것은 교회의 신학적·목회적 책임 영역에 속한다.
두 번째 오해는 AI가 ‘중립적’이라는 생각이다. AI는 수학적 계산을 통해 결과를 내놓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데이터로 훈련되고, 특정 목표를 향해 최적화되며, 경제적·정치적 구조 안에서 운영된다. 결국 그 시스템은 훈련 데이터에 담긴 가치관과 편향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AI가 불의를 확대 재생산할 때, 그것은 악의를 품어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패턴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 분별, 책임의 문제는 AI 사용과 분리될 수 없다. 이제 목회적 돌봄에는 ‘기술적 권위’를 해석하도록 돕는 일이 포함된다.
세 번째 오해는 더 미묘하다. 많은 지도자들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놓친다. AI가 언젠가 목회자를 대체할지 고민하지만, 이미 성도들은 대화형 시스템에 감정적 애착을 형성하고 있고, 추천 엔진에 의사결정을 맡기고 있으며, 인간의 지혜보다 기계가 생성한 요약을 더 신뢰하고 있다.
문제는 가상의 대체가 아니라, 지금 진행 중인 영향력이다. 이를 외면한다고 해서 교회의 충실성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목회적 책임을 조용히 포기하는 셈이 된다.
이쯤에서 많은 지도자들은 압도감을 느낀다. 충실하게 대응하려면 기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프로그래밍 기술이 아니라, 교회가 오랫동안 길러온 고유한 은사인 집중, 분별, 공감, 도덕적 상상력이다.
목회자는 이미 숫자와 데이터가 말하는 것과 실제 삶이 말하는 것이 다를 때를 경험해 왔다. 효율이 아니라 현존이 필요한 순간을 알고, 최적화가 아니라 인내가 필요한 자리를 안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기술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필요성을 더 키운다.
AI가 매개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분별은 더 귀해진다. 역사는 이를 분명히 한다. 인쇄술은 성경을 평신도의 손에 쥐여 주며 권위를 재배치했다. 산업화는 시간과 노동, 가정 구조를 재편했다. 디지털 미디어는 정체성과 공동체를 변화시켰다. 그때마다 교회는 공포에 빠지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맡았다.
AI는 더 깊은 도전을 제시한다. 이전 기술이 소통과 노동 방식을 바꾸었다면, AI는 인간의 ‘판단’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정보 정렬, 신뢰도 평가, 행동 추천—AI는 판단 과정에 참여한다. 이는 단순히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위 주체성’을 건드린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AI는 이해를 흉내 내지만 도덕적 자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과 함께 신뢰와 책임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실천적 결론은 분명하다. 교회가 AI를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사용하고 있다. 설교 준비, 소통, 행정, 교육은 점점 AI 매개 과정을 거친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계속 ‘종’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권위’가 될 것인가?
AI는 작업을 가속화할 수 있지만, 사랑할 수는 없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거나, 회개하거나, 용서하거나, 소망할 수 없다. 슬픔 속에 함께 앉아 있을 수 없다. 이런 일들은 여전히 인간적이며, 동시에 신학적이다.
교회의 소명은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존’이 무엇인지 다시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태도는 바뀐다. 문제는 두려움이냐 수용이냐가 아니다. 분별이다. “교회가 AI를 도입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기계에 의해 지식과 신뢰, 관계가 매개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을 목양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신실하다.
인공지능은 교회에 대한 기술적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제자도의 순간이다. 성도들은 이미 속도는 보상하고 지혜는 무시하는 시스템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 확신은 강조하고 겸손은 약화시키는 문화 속에 있다. 편의는 강화하고 관계는 축소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교회의 응답은 기술을 거부하는 것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해석하는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으며, 무엇을 결코 대체해서는 안 되는지를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다.
교회는 늘 인간이 측정 가능한 산출물의 총합 이상임을 가르쳐 왔다. 예측 모델과 확률 시스템의 시대에, 이 메시지는 더욱 절박해졌다. AI는 패턴을 모델링할 수 있지만 책임을 질 수 없다. 언어를 생성할 수 있지만 자비를 베풀 수 없다. 대화를 모방할 수 있지만 언약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기술적 숙련도도, 문화적 도피도 아니다. 그것은 목회적 명료성이다.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되 인간의 분별, 관계적 돌봄, 신학적 소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공동체를 이끄는 일이다. 미래의 사역은 AI가 얼마나 더 똑똑해지는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교회가 ‘인간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기억하는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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