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와이 신지 감독의 일본 영화 「이사」(원작 소설 영화화·1993)는 초등학생 렌이라는 한 소녀의 시선을 통해 ‘부모의 이혼’이라는 현실을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그려낸다. 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바라보면, 단순한 성장기 드라마가 아니라 이혼이 어린 마음에 어떤 상처를 남기고, 또 어떻게 성장을 통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기록처럼 읽힌다.
영화는 부모의 별거를 앞둔 렌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 속에 흔들리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밤마다 잠을 설칠 만큼 마음은 요동치고, 학교에서는 왕따와 외톨이로 고립된다. 친구들은 렌의 가정사에 대해 속삭이고,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이사의 이유’를 둘러싼 혼란은 그녀를 더 외롭게 만든다. 어린아이에게 이혼이란, 현실적 사실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두려움’이 먼저 다가오는 것임을 영화는 섬세하게 보여준다.
렌은 아버지를 찾아가 “왜 헤어졌느냐”고 정면으로 묻는다. 이 장면은 이혼가정 아이들이 실제로 품는 질문—“내가 잘못해서일까?”, “사랑이 정말 끝난 걸까?”—을 상징한다. 아이에게 이혼은 단순한 관계 파탄이 아니라 ‘세상이 무너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렌의 은둔 작전 실패, 엄마에게 반발하며 뛰쳐나가는 장면 등은 이런 심리적 혼란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영화는 렌을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새해맞이 여행에서 렌은 엄마와 함께 떠났던 산과 바닷가에서 기억 속 환상을 마주한다. 세 식구가 함께 웃으며 모닥불을 피우던 장면이 떠오르고, 렌은 다시 행복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며 절규하듯 외친다. “축하합니다!”
이 외침은 미련과 분노, 슬픔을 모두 태우는 통과의례처럼 그려진다. 일본 전통의 불꽃놀이—옛해를 불태우고 새해를 맞이하는 의례—가 영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상실을 넘어 성장으로 나아가는 심리적 전환점을 이룬다.
결국 렌은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내적 성장을 이룬 소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와 함께 귀가하는 열차 안에서 그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도 학교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 집은 이혼했어. 그래도 난 괜찮아.”
그 순간 왕따였던 아이는 공동체 속으로 들어온다. 다른 이혼 가정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조부와 고모를 찾아가 위로를 받으며, 스스로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상처는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될 때 비로소 치유된다.”
30년 전 만들어진 이 영화가 오늘 재상영된다면 그 의미는 단순한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
당시의 렌이 성인이 되어 40~50대가 된 오늘, 많은 일본 여성들은 바로 그 ‘이혼의 그늘’을 건너 현대를 살아가는 주체가 되어 있다. 이들은 가족 구조 변화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삶을 배웠으며, 전통적인 가족 규범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세대가 되었다. 영화 속 렌의 씩씩함, 솔직함, 자기표현, 공감 능력은 오늘의 일본 중년 여성들의 가치관과 닿아 있다.
또한 이 영화는 일본 사회의 전통적 가족 문화, 공동체적 새해의례, 세대 간 위로의 역할을 통해 ‘공동체가 개인의 아픔을 어떻게 감싸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가족 해체를 개인의 실패로 취급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과 관계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오늘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사회에서 이혼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장기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깊고 복잡하다.
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선택을 바꿀 수 없지만, 어른들은 아이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다.
그리고 상처는 숨길 때 커지고, 말할 때 치유되며,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장으로 이어진다. 30년 전 렌이 그랬듯, 오늘의 아이들도 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나는 괜찮아지고 싶어. 누군가 내 옆에서 진짜로 들어만 준다면.”
영화 「이사」는 바로 그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는 한 세대를 이해하고 또 하나의 세대를 지켜낼 준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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