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의 유가족 이래진 씨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및 '월북몰이' 사건 선고기일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의 유가족 이래진 씨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및 '월북몰이' 사건 선고기일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은폐 시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문재인 정부 당시 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이후 약 3년 만에 내려진 이번 판결에 대해 고(故) 이대준 씨 유족은 강하게 반발하며, 국가가 사건 초기부터 ‘월북’으로 판단해 공식 발표한 행위 자체가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보호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족 측은 특히 이번 판결이 형사 책임이 없다는 판단을 넘어 국가 책임까지 면제하는 것처럼 오인될 소지가 크다며, 국가의 공식 판단과 표현이 고인과 유족에게 끼친 인권 침해 문제는 별도로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안보 라인, 1심에서 전원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과 노은채 전 국가정보원 비서실장 역시 무죄 판단을 받았다.

이들은 2022년 말 차례로 기소된 이후 약 3년 동안 재판을 받아왔으며, 이번 판결로 1심에서 전원 무죄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절차적인 면에서 위법이 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허위가 개입됐다고 단정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실종 보고부터 피격·소각 사실의 보고와 전파,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국가정보원의 대응, 해양경찰의 수사 진행과 수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중대한 절차 위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가의 ‘월북 판단’에 대한 법원의 시각

이번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1심 판결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국가가 사용한 ‘월북 가능성이 있다’,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의 법적 성격이었다. 재판부는 해당 표현을 사실의 단정이라기보다 가치 판단 또는 의견 표현의 영역으로 봤으며, 형사 처벌이 가능할 정도로 허위성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사건 보고를 받은 뒤 “사실을 확인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한 점을 언급하며, 이에 따라 후속 조치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피고인들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지시를 어겼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른바 ‘월북 몰이’ 의혹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판단 시점이 성급하거나 충분히 치밀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미리 특정 결론이나 방향을 정해 놓고 그에 맞춰 회의나 수사를 진행했다고 볼 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라도 국가가 공식적인 판단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책임자들의 판단 역시 존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족 측 "국가의 공식 발표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그러나 고(故) 이대준 씨 유족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입장문을 통해 법원이 국가의 판단과 표현이 초래할 수 있는 고인과 유족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국가의 생명 보호 의무를 간과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법원이 국가가 사용한 ‘월북 판단’이라는 표현을 개인의 사적 의견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한 데서 법리적 오해가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일반 국민과는 전혀 다른 지위에 있으며, 특히 국민의 생명이 침해된 사건에서 국가가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은 그 자체로 권력적 효과와 규범적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의 공식 발표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사실상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성격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구조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국가가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을 반복적이고 통일적으로 사용한 것은, 국가 권위를 통해 사실관계를 단정적으로 규정한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형사 무죄와 국가 책임은 별개의 문제

유족 측은 이번 1심 무죄 판결이 형사 책임이 없다는 판단을 넘어 국가 책임까지 부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형사상 허위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공식 발표가 적정했는지,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김 변호사는 국가의 생명 보호 의무와 인권 보호 책임은 형사 재판에서의 유죄·무죄 판단과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며, 이번 판결에 대해 검찰이 항소해 상급심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건의 경과와 기소 배경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2020년 9월 고(故) 이대준 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격돼 숨진 사건이다. 이후 정권 교체가 이뤄진 뒤인 2022년 6월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면서 사건은 다시 본격적으로 수사 대상이 됐다. 감사원은 관련 내용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고, 국가정보원 역시 박지원 전 원장 등을 고발했다.

검찰은 당시 안보 라인 인사들이 이씨의 피격 사실이 확인된 이후 남북 관계 악화를 우려해 피격 및 소각 사실을 은폐하고, 자진 월북으로 판단했다는 취지의 허위 공문서를 작성·배포했다고 보고 2022년 12월부터 순차적으로 기소했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피격 첩보가 확인된 직후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과 해양경찰청장에게 보안 유지 조치를 지시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피격 사망 사실을 숨긴 채 실종 수색이 진행 중인 것처럼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보안 유지 방침에 동조하고 사건 1차 회의 이후 이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와 자료를 무단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역시 회의 직후 국방부 실무자에게 군사정보체계인 밈스(MIMS)에 탑재된 첩보 문건의 삭제를 지시한 혐의와 함께, 자진 월북 취지가 담긴 보고서와 허위 자료를 작성해 배부한 혐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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