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삿 4:11-24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
17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20 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21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22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여! 죄악이 파도가 넘치나 주의 은혜는 그것을 능히 제압합니다.
죄의 세력이 죽을 몸을 지배하려 하나 그것을 능히 이겨냄은 십자가 은혜이옵니다.
옛 사람이 못박혀 죄의 몸이 불구된 자, 어찌 그 입으로 범죄하리이까?
어찌 그 발로 피 흘리는 데로 달려가며, 그 눈으로 주의 영광을 범하리이까?
죄악과 그로 인한 멸망이 임박한 때에 그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떠나 당신을 떠나는 것을 더 두려워하게 하소서.
죄악이 관영한 시대, 주의 보혈로 내 영혼을 씻어 정결케 하소서.
주의 얼굴빛을 내게 비추사 나로부터 자유케 하소서. 내게 사는 이는 주님이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사사시대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순환을 이룬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
그들이 저지른 악의 본질은 여호와의 말씀을 떠나 언약을 파기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심판하시되 주변의 나라들을 그들의 압제자로 삼으신다.
그들은 압제자가 주는 고통으로 인해 부르짖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하신다(2:16).
사사가 살아있는 동안 평안하나 사사가 죽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악을 행한다.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부르짖고 하나님은 사사를 세워 다시 구원하신다.

사사기 4장에 들어서 옷니엘, 에훗, 삼갈에 이어 드보라와 바락이 사사가 된다.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 악을 행하자 하나님은 가나안 왕 야빈을 들어 그들을 징치하신다.
이스라엘은 20년 동안 압제를 당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이에 두 사람의 사사를 세우시는데 드보라는 재판과 예언을 담당하고 바락은 전쟁을 수행한다.

하나님은 드보라를 통해 바락에게 말씀하셨다.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의 군대를 바락의 손에 넘기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락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드보라가 동행할 것을 요구한다.
드보라는 그와 동행하겠다고 하면서, 다만 이 전쟁으로 인해 그가 영예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스라를 한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여인은 다름 아닌 헤벨의 아내 야엘이다.
헤벨은 모세의 장인(친척) 호밥의 자손으로 겐 사람이다.
호밥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르우엘)의 아들로 언표된다(민 10:29).
그가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친다(11절).
이곳은 납달리 지파가 제비뽑은 곳으로 게데스와 인접해있다(수 19:22).

바락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다볼 산에서 이르렀다(12절).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이 소식을 듣고 철병거 900대와 자기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기손 강으로 나간다(13절).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 날을 승리의 날로 전하자 바락이 만 명을 데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간다(14절).

여호와께서 시스라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신다(15절).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하고 그의 군대는 바락에 의해 전멸 당한다(16절).
시스라가 도망한 곳은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이었다(17절).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 사이에는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당시 하솔 족속과 겐 족속은 목초지와 물을 얻기 위해 상호의존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겐 족속은 이스라엘과도 모세로 인한 혈족관계이다.
그래서 겐 족속은 가나안 족속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이중적인 충성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였다.

야엘이 시스라를 영접하여 안심시킨다(18절).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18절).
시스라가 장막에 들어오자 그에게 이불(덮개, 커텐)을 덮어주었다(의역: 장막 입구의 커텐을 쳤다).
시스라가 목이 마르다며 물을 달라고 하자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였다(19절).
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그에 대해 물으면 '그가 여기에 없다'고 대답하라고 말한다(20절).

시스라가 깊이 잠들자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 간다(21절).
유목민(베두인)들은 지금도 여자들이 장막을 친다. 그래서 여자들이 이런 장비들을 가지고 있었다.
야엘이 조용히 시스라에게로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았다.
말뚝이 머리를 뚫고 땅에 박히고 시스라는 기절하여 죽었다.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하여 야엘의 집에 이르자 야엘이 그가 찾는 자를 보여준다(22절).
바락이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혀 있었다.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굴복시켰다(23절).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야빈 왕에게 고통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들의 고통소리를 듣고 드보라와 바락을 일으키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바락에게 말씀을 주어 전쟁하게 하고 승리를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뜻밖의 인물, 이방여자인 야엘이 전쟁의 승리를 가져온다.
야엘의 행위는 이어지는 5장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에서 칭송되고 있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삿 5:24).

이스라엘과 가나안에 대해 이중적인 충성을 하던 겐 족속은 결정적인 순간 이스라엘을 택하였다.
이것은 겐 족속이 생존하고자 하는 본성적인 결단이다.
그러나 바로 그 배후에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역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바락이 시스라와의 전쟁을 주저하자, 한 여인에게 시스라를 파시겠다고 하셨다(9절).
그리고 그 말씀대로 이루셨다.

시스라를 죽여 거룩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은 야엘이다.
드보라도 바락도 야엘의 남편인 헤벨도 아니다.
시스라는 자기가 굳게 믿었던 야엘에게 참담히 죽임을 당한다.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던 곳이 죽음의 장소가 되고만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되어진 것이며 하나님의 행동하심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야엘의 장막처럼 뜻밖의 사람에게서, 전혀 예상치 않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쟁의 영예가 말씀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 바락에게서 한 여인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는 뜻밖의 존재로 오셨고,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로 오셨다.
그는 가장 작은 성읍 베들레헴에서 나시되(미 5:2; 마 2:6)), 짐승의 구유에서 나셨다(눅 2:7 ).
그는 성지 예루살렘에서 나신 것도 아니요,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의 반열에 속하지도 아니하였다.
그리고 가난하고 비참한 땅 나사렛에서 자라셨다(마 2:23).

그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저주하신 죽음, 나무에 달려 죽는 죽음이었다(신 21:23).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예수를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죄사함과 영생을 주신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자신이 하셨던 일을 수행하게 하신다.

십자가의 낮아짐과 참혹함은 뭇 사람들이 외면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유일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다.
이것은 대대로 십자가 신학으로 언표되었다.
기독교 역사에서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 의해 구체화되었고 바르트, 본회퍼, 몰트만을 통해 계승되었다.

십자가 신학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간 이성이나 우주의 질서, 혹은 교회의 영광에서 발견하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가장 무능해 보이는 십자가의 비천함과 고통에서 발견된다.
즉 하나님은 인간이 볼 때 하나님과 무관해 보이거나 심지어 반대되어 보이는 것, 낮고 천하고 멸시받으며 버려진 것들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을 발견하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과 멸시, 거절과 분리, 어둠의 자리이다.

십자가의 구원은 오직 은혜에 의한 구원이다.
십자가에서는 어떤 인간의 공로도 자랑도 폐한다.
십자가의 구원은 반드시 십자가의 삶으로 이끈다.
그것은 십자가가 의미하는 어두움, 고통, 생의 부정성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나아가 십자가를 지고 이 세상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십자가 공동체로서 교회의 삶은 어둠을 거부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함께 이 어둠을 수용하고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삶에 대한 헛된 낙관과 같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어둠을 뚫고 가는 믿음이다.
그곳에서 비참하고 고통스런 십자가에서 시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4. 나의 묵상

나는 십자가신학과 반대되는 번영신학에 몰두한 자였다.
예수 잘 믿으면 세상에서 복 받고 잘살게 되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 알았다.
한 때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듯 싶었다.
그러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정상에 오를 듯 하면 골짜기로 굴러 떨어졌다.

거듭된 심판과 구원을 경험하며 50세에 이르렀다.
세상과 교회 안에서 많은 성취를 하였기에 보란 듯한 여생을 확신하였다.
내가 굳게 믿었던 번영신학은 내 삶에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즈음 죽음이 임했다.
시스라가 죽음을 면하기 위해 들어간 장막에서 죽임 당했다.
나 또한 죽음을 면하기 위해 피했던 존재물의 장막에 죽음이 임했다.
오랜 시간 취해 있던 번영신학의 미몽에서 깨어났다.
내가 피하고자 했던 죽음, 무덤, 어둠, 비참함에 이르렀다.
그런데 바로 뜻밖의 장소에서 놀라운 구원이 임했다.

그 곳은 내가 평생 두려워하고 피하고 외면하던 자리였다.
비참한 나의 실존이 드러나는 곳, 그래서 무화과 잎으로 가리고 덮던 자리였다.
언젠가 없어지고 말 것들,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람들, 그것들이 제거된 자리는 실로 어둡고 침침한 무덤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곳, 전혀 예상하지 않은 자리에서 구원이 임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무덤의 자리에서 영생으로 태어난 것이다.

야엘이 시스라를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은 아무리 보아도 경이롭다.
십자가와 무덤의 자리가 구원인 것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롭다.
오늘도 나는 그 구원을 얻기 위해 십자가와 무덤으로 들어간다.
내가 피하고 벗어나고 도망가고 싶은 현실, 그곳이 내가 구원 얻은 자리이다.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른다.

5. 묵상 기도

아버지여...
당신의 구원은 심히 경이롭습니다.
어찌하여 시스라를 한 여인, 야엘의 손에 파셨나이까?
드보라도 아니요 바락도 아닌 미천한 이방여인에게 넘기셨나이까?
미련하여 멸망 길을 가는 자, 당신의 구원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아버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옵니다.
구원의 가능성이 전무한 바로 그곳에 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번영신학에 취하여 세상에 빠진 자를 구원하신 것은 아들의 십자가였습니다.
내가 피하여 도망하던 바로 그곳에서 내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아들의 죽음과 연합되었으며 영생의 문이었나이다.

아버지...
아들을 통해서 당신께 나아가게 하신 크신 일을 찬양합니다.
그 아들은 오늘도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 장사되어 있나이다.
내가 피하고 싶은 현실, 바로 오늘 이곳이 구원의 자리이옵니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은 자, 내 영혼이 잠잠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나의 구원이 거기로부터 나옵니다. 십자가와 무덤에서 나오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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