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산망을 마비시킨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의 원인을 둘러싼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충분히 예방 가능했던 ‘예견된 인재(人災)’였다는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배터리 충전량 초과, 소방점검 미이행, 수명 초과 장비 사용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무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안전부와 국정자원에 따르면 이번 화재의 주요 원인은 ‘배터리 충전 용량 초과’로 지목됐다.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 배터리를 분리할 때는 충전 용량을 30%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업계의 표준 지침이 존재하지만, 당시 작업은 배터리 충전 상태가 약 80%인 상황에서 진행됐다.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의 “배터리 과충전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된 것이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고 의원은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들은 분리 작업 시 충전 상태(SOC)를 반드시 30% 이하로 낮추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국정자원은 이를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사고 이후 확인해 보니 배터리 SOC가 약 80%였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 정재한 전무 역시 “제품 출하 시 충전 상태를 30% 이하로 유지하도록 한다”며, 이번 국정자원의 관리 방식이 기본 안전 기준에서 크게 벗어났음을 시사했다. 고 의원은 “충전량만 줄였어도 전기 단락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까웠을 것”이라며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방점검 ‘보안 이유’로 미이행… 당국도 부적절 인정
배터리 관리 부실에 더해, 소방 당국의 화재안전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의원은 “작년 5월 국정자원에 대한 화재안전조사 결과 보고서에 ‘2~5층 전산실 및 보안구역 화재안전조사 미시행’이라고 기재돼 있다”며 “소방 점검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기기 오작동 우려로 점검을 미룬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소방 점검을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보안을 이유로 전산실이 점검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사실이지만, 적절하지 않은 조치였다”고 인정했다.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도 “보안구역이라는 이유로 조사가 진행되지 못했다”며 “당시 좀 더 적극적으로 점검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채 의원은 “법에 따른 정기 화재안전조사만 이행했더라도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며 “기본적인 안전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인재”라고 비판했다.
◈배터리 수명 초과·작업 인력 혼선… 총체적 관리 실패
화재 이후 조사 결과, 문제의 배터리는 이미 사용 수명이 만료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재용 원장은 “배터리 수명 초과 사실은 화재 이후 조사 과정에서 확인했다”며 “정기점검 리포트를 검토한 결과 교체 권고가 있었지만, 1~2년 더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해당 배터리는 사용 연한 10년을 초과했으며, 지난해 6월 교체가 권고된 상태였다.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기점검 보고서를 직접 검토했느냐”고 묻자, 이 원장은 “보고서를 하나하나 보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이는 기관 내부의 점검 체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작업 인력 규모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여러 차례 번복된 점도 논란을 키웠다. 사고 직후 정부는 배터리 교체 작업 인원이 13명이라고 밝혔으나, 사흘 뒤 8명으로 수정했고, 이후에는 감리인 1명을 포함해 총 15명으로 정정했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뒤늦게 수치를 변경하며 사실을 축소·은폐하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철저한 관리만 이뤄졌다면 이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 “안전기준 위반이 부른 전형적 인재”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가 명백한 절차 위반과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전형적 인재’라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배터리 이전 작업 시 시방서(작업 기준서)를 따르지 않은 것은 명백한 관리 실패”라며 “공공기관의 경우, 단순 교육 이수로 관리자 자격이 부여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관리자는 전문성과 실무 경험을 갖춰야 함에도 제도적 허점이 여전히 크다”며 “공공기관의 안전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재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국정자원 화재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기본적인 안전 절차가 무너진 결과로 평가된다. 배터리 충전량 조정, 정기점검 이행, 소방안전조사 등 최소한의 원칙만 지켰더라도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 전산망 마비 사태는 ‘피할 수 있었던 인재’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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