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가 전 지구적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이를 여전히 과학이나 정책, 혹은 단순한 환경 보호의 영역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신간 『지구에 속한 자』는 기후 위기가 실은 매우 깊은 ‘신학의 문제’임을 날카롭게 짚어내며, 신앙인들이 응답해야 할 새롭고 실천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인 그레이스 지선 김은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한 장로교 목사이자 조직신학자다. 그는 자신의 이민자, 여성, 아시아계라는 교차적 정체성과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기후정의 실무를 담당했던 묵직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기후와 정의가 만나는 지점을 치열하게 성찰해 냈다.
기후 위기와 ‘교차하는 불평등’
이 책은 기후 위기를 단순히 기온이 오르는 단일한 현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기후 위기가 경제, 젠더, 인종, 식민주의와 어떻게 거미줄처럼 얽혀 ‘교차하는 불평등’을 빚어내는지 고발한다.
미시간주 플린트 사태,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스탠딩 록), 팔레스타인의 물 분쟁 등 저자가 직접 목도한 구체적인 사례들은 기후 재난이 가장 소외되고 취약한 이들의 삶을 어떻게 우선적으로 파괴하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백인 남성 중심의 하나님 이미지 비판과 ‘동사이신 하나님’
가장 돋보이는 신학적 통찰은 4장 ‘하나님은 동사이시다’에 담겨 있다.
“하나님을 왕, 아버지 같은 고정된 명사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랑하고 창조하고 숨 쉬시는 ‘동사’로 다시 상상해야 한다.”
저자는 오랜 세월 그리스도교를 지배해 온 백인 남성 중심의 신 이미지가 어떻게 가부장제와 인종차별, 환경 파괴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는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나아가 흑인신학, 에코페미니즘, 북미 선주민 생태신학 등 다양한 해방신학의 전통을 직조하여 생명을 살리는 대안적 하나님 이해를 모색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어의 고유한 정서인 정(情), 기(氣), 한(恨), 그리고 ‘빨리빨리’ 문화를 신학적 자원으로 적극 끌어들여 서구 신학과 뚜렷이 구별되는 독창적인 시각을 선보인다.
일상의 언어로 체화된 생태신학
『지구에 속한 자』는 결코 딱딱하고 창백한 이론서가 아니다. 세례의 물에서 시작해, 추석의 송편, 길가의 민들레 같은 저자 개인의 따뜻한 기억과 일상적 경험을 거치며 거대한 기후신학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체화된 언어로 풀어낸다.
한국 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특별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장 끝에는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들’이 마련되어 있어 개인의 묵상은 물론 교회 내 소그룹 스터디나 독서 모임 교재로도 탁월한 활용도를 자랑한다.
지구에 속한 한 존재로서, 다가오는 기후 위기 앞에서 신앙인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슬퍼하며, 어떻게 연대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관념화된 희망을 넘어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은 훌륭한 생태신학적 초대장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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