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디 1:1, 딤전 3:2)
사도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라”고 권면했다. 청지기의 삶은 권력이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맡겨진 양을 돌보고 하나님의 뜻과 정의를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자리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 안팎에서 섬김, 겸손, 정직, 투명성으로 모범이 되어야 하며, 공적 영역에서도 교회의 신뢰와 복음의 명예를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경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긴장을 동시에 가르친다. 하나는 국가 권세에 대한 순종이다.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롬 13:1)고 하여, 그리스도인도 국가의 질서와 법을 존중하고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우선적 순종이다. 사도행전 5:29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선언한다. 즉, 국가의 법이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를 때 신자는 불복종할 자유와 책임이 있다. 예수님의 말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마 22:21)는 국가와 교회가 각각의 권한과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 원리가 오늘날 말하는 정교분리 원칙의 기초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제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선언한다. 이 조항은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또 종교가 국가권력을 이용해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양방향 원칙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공적 사안에 목소리를 낼 자유를 누리지만, 그 방식은 법적 절차와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교분리 원칙은 과거에는 국가의 종교 간섭을 막는 데 초점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교회가 어느 정도까지 정치 현안에 개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논의가 되고 있다.
최근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은 정교분리의 현실적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목회자의 예언자적 사명은 사회의 정의와 공공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지만, 선거운동은 특정 정치 세력의 권력 획득에 직접 관여하는 일이므로, 법적 한계를 넘을 때 사회는 교회를 공정성 훼손의 책임 주체로 바라보게 된다.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도주 우려를 구속 사유로 인정했다. 그러나 주거가 확실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에게까지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그간의 선례에 비추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목회자의 설교에서의 발언에 선거법 위반의 굴레를 씌우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85조 제3항은 위헌의 논란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히 법리적 정당성 논쟁을 넘어, 교회 지도자가 사회적 신뢰와 공정성의 상징이어야 함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교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한쪽에서는 현 정권에 비판적인 보수 목회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강단에서 반복되는 정치적 발언으로 목회자 스스로 교회의 권위를 약화시켰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그 정치적 배경과 상관없이, 이번 구속은 한국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경고일 수 있다.
목회자는 그 머리를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향하지만 그 발은 세상 권력이 지배하는 땅에 두고 살아간다. 세상이 잘못된 길로 갈 때 이를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대의 선지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교회의 강단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자리여야 하며, 목회자는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최우선 가치를 두어야 한다.
영적 지도자인 목사는 현세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영적 위로를 전하고,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게 하며, 세상 속에서 윤리적 삶의 기준을 제시하는 청지기적 사명을 받았다. 이 사명이 온전히 회복될 때, 교회는 반목과 혼탁한 현실 정치 속에서도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정치적 이념이 아닌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교회가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참된 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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