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삼상 17:45-47, 수 1:9)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약관의 청년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는 거인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고 담대히 외쳤다(삼상 17:45-47).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 정복에 임하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격려하셨다(수 1:9).

여호수아와 다윗은 단지 군사적 영웅이나 정치 지도자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자요, 영혼을 돌보는 목자였으며,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이끈 용맹한 지휘관이었다. 한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손에 칼을 들고 싸웠던 이들의 모습은 군인이면서 동시에 성직자라는 오늘날 군종장교의 이중적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물론, 여호수아와 다윗이 살았던 신정정치 사회와 현대 헌법 국가에서 군종장교가 맡는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이들은 성직자이자 동시에 군 최고지휘자였지만, 군종장교는 헌법상 정교분리원칙이 적용되는 국가공무원이자 특정 종단에서 파송된 성직자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진다. 따라서 군종장교제도와 관련하여 정교분리원칙의 적용 여부와 그 한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2003년, 한 군종목사가 특정 종파(구원파)를 이단으로 규정한 교육책자를 발간하고 공군 기지 내 예배에서 이를 설교하자, 구원파 측은 정교분리원칙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군종장교는 군인(공무원)인 동시에 종단에 소속된 성직자로서의 신분을 가지므로, 설교나 종교의식에서 소속 종단의 교리를 선전하거나 타 종단을 비판하는 것이 종교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군종장교의 성직자적 역할에는 정교분리원칙이 곧바로 적용되지 않음을 인정한 판례다.

군종제도는 본래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 기원하였다. 중세 유럽의 기사단과 군을 동행하던 성직자의 전통에서 유래되었으며, 현대적 제도로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영국 등 서방국가에서 체계화되었다. 한국에서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요청과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으로 기독교와 천주교 군종장교가 처음 임관하였고, 1968년에는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불교계 요청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이 불교 군종장교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후 40여 년간 3대 종단(기독교, 불교, 천주교) 중심으로 운영되다가 최근 들어 일부 소수 종단에도 부분적 문호가 개방되고 있다.

현재 국방부 「군종업무에 관한 훈령」은 군종목사의 지위를 "장교로서의 신분과 소속 종단으로부터 파송된 성직자로서의 신분을 함께 가진 자"로 규정하며, 그 직무를 “신앙전력화를 위한 종교·교육·선도·대민업무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는 군종장교의 이중적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그 본질적 임무를 선교나 복음전파가 아닌 ‘신앙전력화’에 둔다. 즉,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칼을 들었던 여호수아나 다윗과는 지위와 사명의 방향성이 분명히 다르다.

그 결과, 군종장교가 성직자의 자격으로 집례하는 예배나 설교는 대법원판결과 같이 정교분리의 예외 영역으로 보호되지만, 일반 장병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인성교육이나 대민업무에는 정교분리원칙이 엄격히 적용된다. 특히 군종 인성교육에 대해서는, “가치관·인생관·사생관·윤리적 태도 확립에 중점을 두고, 교육 중 선교 및 포교활동은 하지 않는다”는 명시 규정이 있다. 그러나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사랑, 희생, 절제, 용서, 소망 등 기독교적 가치와 성경에서 유래된 윤리 개념들이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전해지고 있다.

가이사의 법이 어떻게 정하든, 군종장교는 군복을 입었지만 성경을 품고, 계급장을 달았지만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외치며 물매돌 하나로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은, 군종장교의 사명과 정체성을 가장 온전히 상징하는 성경적 인물이다. 그는 예배자이자 전사였고, 목자이자 지휘관이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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