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 군인 간 합의하에 이뤄진 성적 행위라도, 그것이 군기 유지가 요구되는 군 생활관이나 근무 시간 중에 이뤄졌다면 군형법상 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정하면서도, 군 조직의 특수성과 상명하복의 원칙을 해치는 행위는 군율 위반으로 본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군형법상 추행죄로 기소된 전직 군인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동성 군인이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성행위를 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한 이후, 군 내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해 군기 침해 기준을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한 사례로 주목된다.
A씨는 2020년 충남 논산의 한 육군 부대에서 함께 복무 중이던 B씨와 유사 성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이 문제 삼은 행위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근무 외 시간에 막사 내 격리 생활관에서 있었던 성적 접촉이고, 다른 하나는 B씨가 새벽 불침번을 서던 중 화장실에서 벌어진 유사 성행위였다.
검찰은 군형법 제92조의6(추행) 조항을 적용했다. 이 조항은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군인 간 성행위를 엄격히 처벌해왔다.
그러나 2022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영외 독신자 숙소에서 있었던 자발적 성행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기존 관행에 변화가 생겼다. 이 판례는 군기와 무관한 사적 영역에서 이뤄진 행위에 대해선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판단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이후 유사 사건에서 '군기 침해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1심은 해당 전원합의체 판례가 나오기 전이었던 만큼 A씨에게 징역 4개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2심은 "격리 생활관에서 근무 외 시간에 이뤄진 행위는 군기를 직접적으로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으며, 화장실에서 이뤄진 행위에 대해서도 "근무 시간 중이라도 은밀한 공간에서 있었고, 임무 수행에 지장을 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생활관은 군사 훈련 및 단체 생활의 일부로, 상명하복과 군율이 요구되는 공간"이라며 "근무 중 군인이 화장실에서 유사 성행위를 한 것은 명백히 군기와 임무수행 태도를 해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어, "동성 군인 간 자발적인 성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이 군율 유지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공간이나 상황에서 이뤄졌다면 군형법상 추행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는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되, 그것이 군 기강을 훼손하는 수준이라면 제한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구체적인 적용이 모호했던 군기 침해 기준에 대해 첫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판례"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유사 사건의 재판에서 본 판결이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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