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15:3-8)
신자들 뿐인 부활 증인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성경 기록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본문 설명처럼 부활하신 후에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과만 만났지, 당신의 대적들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스승의 시신을 훔쳐서 숨겨 놓고서 부활했다고 거짓을 퍼트렸다는 반론이 지금까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간혹 그 주장이 왜 틀렸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자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 안에 제기된 여러 문제에 대해서 바울이 올바르게 가르치는 서신입니다. 이방인 중심의 고린도 교인 중에 그런 루머에 현혹이 되어서 주님의 부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던 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았던 수많은 증인이 당시에 아직도 살아 있으며 마지막으로 자기도 부활 주님을 만났다고 간증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런 간증만으로는 주님이 제자들만 만났으니까, 또다시 부활은 제자들의 거짓 증언이라고 반박할 것입니다.
다행히 마태가 시신도난설의 부당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실적인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을 뿐 아니라 유대 대중 앞에서 선포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사렛에서 온 인간 랍비가 부활할 리 없다고 믿었던 그들로선 혹시라도 자기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시켜도 제자들이 그 시신을 도둑질해 숨겨 놓고선 백성들에게 그가 다시 살아났다고 거짓말을 퍼트릴 수 있다고 지레짐작으로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운명하여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장되자마자 빌라도 총독의 허락을 받아 경비병을 세우고 사흘 동안 무덤을 지키도록 조치했습니다. (마27:62-66)
그러나 주님의 예언대로 십자가 처형 후 사흘째인 안식 후 첫날 새벽에 그 무덤을 막았던 돌이 열려 있었고 무덤 안은 텅비어져 있었습니다. 주님은 돌로 막혀 있어서 경비병이 감시할 수 없는 무덤 안에서 물질적인 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신령한 육신으로 부활하신 후에 그 무덤에서 이미 벗어나셨던 것입니다. 또 무덤을 막았던 돌도 주님이 아무 소리 없이 구르도록 했을 것이므로 그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들은 안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시신에 향품을 넣으려고 이른 새벽에 찾아온 여인들이 처음으로 돌이 굴러져 있고 무덤 안도 비워진 것을 발견하고는 경비병들에게 알렸습니다.
경비병들은 곧바로 대제사장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보고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졸았다면 책임 추궁이 가혹하게 따를 것이므로 밤새 순번제로 눈을 부릅뜨고 무덤 입구를 지켰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도 그 점을 잘 알기에 경비병들을 전혀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돈을 주어서 자기들이 누워 잘 때에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는 소문을 퍼트리라고 명했습니다. (마 28:11-15) 경비병들은 대제사장이 엄하게 명령한 데다 돈까지 받았으니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시신도난설은 제자들이 아니라 대제사장들이 조작해 낸 루머였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처형 후까지도 주님의 부활 예고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서 숨어 있었을 뿐 시신을 훔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주님이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자기들도 온전히 믿지 못했던 부활을 다른 이는 더더욱 못 믿을 것이므로 부활을 꾸며낼 리가 없습니다. 거기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려 죽으면 하나님께 저주받았다고 여겼으므로, 십자가에서 그친 예수 운동이라면 거짓말을 지어내면서까지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로 전환하겠다는 시도는 아예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경비병들에게 돈을 줄 때 자기들이 그렇게 부탁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28:15)라고 증언합니다. 경비병 중에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서 양심선언을 한 자가 나왔기에 유대 사회에서 쉬쉬하며 떠도는 비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부활을 조작했다면 그들 중에도 양심에 찔려 사실이 아니라고 선언할 자가 한 명은 나올 것입니다. 거기다 실제 사실이 아니라면 복음서가 증인으로서 아무 효력이 없는 여인들을 부활의 첫 증인이라고 기록할 리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기들이 조작한 거짓 교리를 지키려고 순교까지 당할 바보는 더더욱 없습니다.
이처럼 정작 유대 대중은 십자가 사건 직후부터 시신도난설이 조작된 것이라서 믿을 바 못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그것으로 기독교를 공격하는 단골 메뉴로 삼는 자들은 스스로 비논리적이고 어리석다고 인정하는 꼴입니다. 부활은 죽어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고집으로 마지막 심판은 없고 이 땅이 전부라고 믿은 것입니다. 자기들은 물질에서 우연히 진화된 짐승 같은 존재라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 보이지 않은 까닭?
지금도 온갖 논란이 분분하니까 주님이 부활 후에, 이왕이면 빌라도 총독이나 대제사장들 앞에 나타나셨더라면 찍소리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아니면 부활 후 사십일 만에 승천하시지 말고 열흘만 더 머물다 오순절에 성전 한복판에 임재하시고 또 바로 그곳에서 수천 명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더라면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로마도 기독교를 더 일찍 공인했을 것이며, 최소한 부활에 대한 시시비비는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요셉의 무덤에서부터 불신자인 경비병들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오백여 명 앞에 일시에 나타나신 때도 바울이 형제라고 표현했으므로 신자들이거나 주님에게 호의적인 자들이었습니다. 승천도 겨우 120 여명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부활 후에 소수의 제자와만 만나신 뜻이 대체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고서 부활 승천하실 때까지 당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려고 굳이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서 메시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너희가 가서 보고 듣는 것을 스승에게 그대로 고하라”고만 대답했습니다. 당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 절대 믿음을 강요하거나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제자들에게 성경을 저작하라고 명한 적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나중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영감을 주어서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만든 후에, 각자가 자신의 체험적인 언어로 십자가 복음을 고백하길 원했습니다. 굳이 미리 지시하지 않아도 복음 전파의 열정이 생기면 당연히 성경을 저작하게 될 것이라고 아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하고선 주님과 함께했던 지난 삼 년이 일반적인 랍비와 제자의 관계가 아니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주님과 연결해 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자, 스승이 바로 독생자 하나님이셨고 또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자기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셨음을 확신하고서 주님을 하나님과 동격에 두고 경배했던 것입니다. 제자들로선 주님이 구약성경이 계시 약속한 메시아를 넘어서 하나님 바로 그분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신약성경을 저작해야만 했습니다.
실제로 네 복음서가 말하는 바를 논리적으로만 따져도 예수님은 미친 사람이거나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이지, 일반적인 인간일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사역 중에도 그런 논쟁이 있었는데, 주님이 미친 사람일 리는 절대 없으므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부활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말하자면 후대 신자들이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온전히 믿으면 부활도 너무나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에 대한 그런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객관적으로 타당하게 변증해도 부활에 대해 귀를 닫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신 것입니다.
부활 사건을 제자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황당하게 여기면 그 사람의 궁극적인 운명만 황당해집니다. 복음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서 인간이 다시 살아난다니 웃기지 말라고 비방하면, 하늘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웃으시며 영원한 심판을 내릴 것입니다. 공사역 초기에 니고데모에게 주님이 당신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믿지 않으면 영벌을 받는다고 가르친 까닭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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