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이방인 선교가 많은 열매를 맺자 그를 시기한 유대주의자들이 할례가 구원의 필수 조건임을 강조하고자 예루살렘에서 내려왔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언약백성임을 증빙하는 절차이자 표식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래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구원 언약 밖에 있다고 할례 없는 죄인이라고 멸시했습니다. 예수님 당시까지도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는데 할례가 필수적 절차였습니다... “무엇을 주랴 하나만 구하라”고 하시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삼대 왕에 즉위하는 의식과 제사를 거창하고도 경건하게 마쳤습니다. 그 날 밤 그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은 주겠다는 뜻입니다. 잘 알다시피 솔로몬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10절), 하나님도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주의 동역자가 되지 못할 자는 없다
바울이 선교사역을 함께 할 동역자로 마가 대신에 디모데를 택하는 이유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16:2) 둘 다 로마의 자치 주(州)의 이름인데 한두 개의 교회가 아니라 아주 넓은 지역의 많은 이들로부터 그 인격과 믿음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부활에 대해 꼭 알아야 할 사항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나오느냐”라는(15:35)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에 대해 바울은 씨를 뿌리는 비유를 먼저 들었습니다. 씨만 보면 장래형체를 모르지만 땅에 심으면 씨는 죽고 그 종류별로 열매가 열립니다. 부활 과정과 형체도 “이와 같으니” 즉, 먼저 반드시 죽어야 하고 그럼 하늘에 속한 씨는 하늘에 속한 형체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해야만 신자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 육체적 죽음 이후의 인간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 많은 철학자와 종교가들이 고뇌를 했습니다. 기독교만이 마지막 날에 신령한 육체로 부활함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증거이자 첫 열매로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통과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얻고(20,22절), 나중에 멸망.. 감정은 신앙의 대적이 아니다
대대로 유교적 관습과 가르침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교인은 경박하게 행동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인식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실제 기질은 이탈리아인처럼 아주 감정적이다 못해 격정적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도 외적으로만 경건하려드니 지정의의 전체적 균형이 이뤄질 리가 없다. 당연히 한국 신자들 대부분이 감정을 잘못 절제하여 실패한 경험이 성공한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결과 감정은.. 진짜로 본받을 만한 기도(2)
성경에서 다윗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자도 드물 것입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에 잠시 이스라엘의 환호를 받은 일을 빼면 비록 왕이 되었어도 고난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평안한 짬이 났을 때마저 충직한 부하의 아내와 간음하고 그 부하는 죽이는 큰 죄를 저질렀고 그 사이에 난 아들은 죽어버려 결코 그 마음이 편할 수만 없었습니다... 진짜로 본받을 만한 기도(1)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은 신자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어떤 면에서 그러한지 구체적으로 말하라면 잘 모릅니다. 자기를 죽이려 쫓아다닌 사울을 거꾸로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두 번이나 맞았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인간이 죽일 수 없다고 살려준 사실만 기억합니다... 욥10:10의 정확한 해석은?
욥기의 해석에서 가장 먼저 전제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는데, 거의 전부가 시가로 이뤄져 있다는 것입니다. 서두의 1:1-3:2와 마지막 결론인 42:7-16과 중간의 문단을 연결하는 부분만 산문(散文 - 평이한 서술문)의 형태일 뿐, 대부분이 운문(韻文 - 시적 표현)이라고 이해 접근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 구절에는 상징과 비유 같은 문학적 기법이 사용되었다는 뜻이며 본문 또한 그러합니다. .. 주님의 영광을 보고 있는가?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 한없는 부러움을 가집니다. 주님과 함께 3년이나 동고동락했으니 너무나 풍성하고도 깊은 영적 깨달음과 충만한 심령의 평안과 기쁨을 얻었으리라 짐작되니 사뭇 시기까지 납니다. 본문에서 요한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아버지의 영광에 비견하고 그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묘사했듯이 말입니다... 여호와와 함께 춤추어 봤는가?
다윗은 항상 여호와를 송축하는데 그 찬송을 듣는 곤고한 자가 기뻐한다고 합니다. 나아가 그는 그들더러 함께 찬양하자고 초대합니다. 그럼 그의 노래 부르는 실력이 아주 뛰어나 듣는 이가 저절로 흥겨워져서 찬양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입니까?..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시편은 총 150편으로 이뤄졌습니다. 비록 후대의 사람들이 수집 편집한 것이지만 마지막 시편의 마지막 절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150:6)라고 끝납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항상 기뻐하며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살아가는 첫째 목적이자 궁극적 의미가 바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교제 동행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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