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영적 애굽에서 건져 내고 홍해를 건너게 하십니다. 이 세상의 창조가 오직 하나님의 것이듯, 십자가는 이 세상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음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시어 우리의 잃어버린 존재의 의미를 찾아 주십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잃어버린 이 세상의 주인을 찾아 줍니다. 이 세상의 주인을 찾을 때 내 존재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이 말씀을 통과해야만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찾는 유일한 길은 믿음입니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때는 우리가 그 말씀을 믿을 때입니다. 성경은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찾아 주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재발견하게 함으로 하나님 백성의 위치를 찾아 준 것처럼 말입니다.
장해진 – 나를 찾아 주는 말씀
사람들은 점차 에녹을 다르게 느끼기 시작했다. 득남의 기쁜 소식에 저리도 긴 시간으로 기도하고, 전에 보다 울부짖고 애원하는 간절함이 길어서 의아하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일이 있길래 하나님과 대화를 저리도 오래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족들도 알고 이웃들도 다 알게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다리다 지친 가족들이 하나, 둘 동산을 내려가고,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한나절이 되자, 갑자가 에녹이 벌떡 일어났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급한 마음으로 허겁지겁 미끄러지듯 동산을 내려와서는 멀리 갈 채비를 주섬주섬 챙기는 것이었다. “아니, 왜 그래요 여보? 무슨 일이에요? 식사도 안 하시고?” 일부러 아들 보기를 외면하는 듯한 행동에 레베카가 불안에 잠겼지만, 처음 보는 에녹의 넋 나간 황당한 표정에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므두셀라가 태어난 날, 아버지 에녹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등을 보이며 낙타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김선옥 – 므두셀라
내가 믿고 싶은 것(하고 싶은 것)과 내가 믿어야 할 것(해야 할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의 무모함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믿음의 결과물, 즉 내가 해야만 할 하나님의 뜻으로 치부하려는 강한 습성입니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나 신앙생활을 금방 시작한 사람들만이 저지르는 실수가 아닙니다. 이는 믿음이나 신앙의 연륜과 관계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용서를 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아빠 아버지가 아니라면, 절대로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크신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내려놓고 그 품에 안겨서 마음껏 울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놓으신 십자가-용서와 화해의 요청-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동주 - 야곱으로 지으시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신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