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박정욱 작가는 런던, 암스테르담, 바티칸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을 다니며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신앙의 메시지로서 명화를 만났다. 배낭만 메고 각국의 미술관을 누비던 젊은 의학도에서 이제는 삶으로 선교하는 의사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 그림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를 진솔하게 나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복음을 선포하는 바울, 용감하게 아하수에로에게 나아가는 에스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 등 서양화에 담긴 성경의 알레고리를 하나씩 발견하며, 영화나 뮤지컬 관람보다 더 재밌고 두근거리는 일이었던 성화 관람의 기록을 공개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그리스도가 이해하길 원하신 것은 환우의 회복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환우가 아닌 바로 죄인이자 병자인 저에게 내미신 그분의 손길이었던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향한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로의 초대를 깨닫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는 부끄러움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림처럼 제자들과 유독 한 병자에게만 다가가 질문하시며 그의 거룩한 손을 내미셨습니다. 단 한 사람에게 내미신 그 손의 의미는 바로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감격의 순간이어야만 했습니다. 이 사건은 더 이상 성경이나 에피소드 속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바로 그 혈기가 마른 병자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이 그림을 통해 그분이 내게 은혜와 긍휼의 손을 다시 내미시는 듯했습니다. 그림 앞에서 저는 가슴이 얼어붙어 미술관 내에 있던 소파에 몸을 털썩 기대고 한참을 흐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명화를 볼 때 지나치게 표현 기법과 미술사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이해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해당 그림에 얽힌 스토리를 이해하는 정도로 그림을 감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와 상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와 사랑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와 노력입니다. 정말 우리 주님은 이렇게 낭만적이며 인간적인 분이시며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직접 겪으신 나의 진실한 구원자이십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심할 여지 없이 율법의 완성은 바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일 것입니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사랑만 고백하고 아무것도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허구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과 헌신은 모른척한다면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고개를 향하고 기꺼이 나아가는 진정한 ‘크리스토스’가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부활의 아침에 무덤으로 달리는 제자 베드로와 요한의 그림을 보기 전에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다음날 모여 같이 괴로워하던 제자들의 심정과 기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부활절 아침 소식을 듣고 달려가는 이 두 제자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믿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은 이처럼 통곡과 눈물 가운데 피어나는 꽃과 같은 생명과 소망이었던 것입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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