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자 김재규(전 중앙정보부장) 피고인이 육군본부 계엄 보통군법회의(재판장 김영선 중장)에서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포승에 묶여 걸어오며 웃고 있다. 이날 김재규, 김계원,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등 7명은 내란목적살인죄가 적용돼 사형을 선고 받았다. <1979년 12월20일, 권주훈>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자 김재규(전 중앙정보부장) 피고인이 육군본부 계엄 보통군법회의(재판장 김영선 중장)에서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포승에 묶여 걸어오며 웃고 있다. 이날 김재규, 김계원,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등 7명은 내란목적살인죄가 적용돼 사형을 선고 받았다. (1979년 12월20일, 권주훈) ©뉴시스

법원이 1979년 ‘10·26 사태’로 사형을 선고받은 고(故)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사형 집행 45년 만이며, 유족 측이 재심을 청구한 지 5년 만이다.

1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부장판사 이재권)는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재규의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법원은 당시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며 재심 개시 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일간 구타와 전기 고문 등 폭행과 가혹 행위를 가한 사실이 기록상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인신 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피고인에게 폭행과 가혹 행위를 가한 것으로, 형법 제125조 폭행·가혹 행위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심 대상 판결 중 피고인에 대한 부분은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됐음에도 공소시효가 완성돼 확정 판결을 받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및 제422조에서 정한 재심 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튿날 보안사령부에 구금됐고, 같은 해 11월 26일 군법회의에 기소됐다. 이후 12월 4일부터 20일까지 16일간 진행된 재판에서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미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은 불과 6일 만에 마무리됐으며, 1980년 5월 24일 대법원의 형 확정 판결 이후 사흘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 집행까지의 과정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면서, 당시 재판이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김재규의 유족 측은 2020년 5월, 사건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며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후 2023년 4월 17일 1차 심문이 열렸으며, 법원은 총 3차례의 심문을 거쳐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했다.

이번 재심 개시 결정은 김재규의 사형 집행 이후 45년, 유족의 재심 청구 후 5년 만에 내려진 것이다.

한편, 한국 1세대 인권변호사로 김재규의 변호를 맡았던 고(故) 강신옥 변호사가 생전 전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책 『영원히 정의의 편에』가 최근 출간됐다. 저자인 홍윤오 씨는 책에서 강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한 동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은 ‘각하는 갈수록 애국심보다 집권욕이 강해졌다’는 진단이었다"고 회고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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