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모간 하우절(Morgan Housel)의 최신간 『불변의 법칙』(서삼독, 2024)에 나오는 내용이다. 언젠가 그가 워런 버핏(Warren Buffet)과 가깝게 지내는 한 남자를 만나 점심 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었다. 그 남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는 2009년 말, 워런을 차에 태우고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의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때였고, 오마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상점과 사업체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 남자가 친구인 워런에게 세상이 암울한데 경기가 회복될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워런은 그에게 1962년에 가장 많이 팔린 초코바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답하자 그건 ‘스니커즈’라고 말했다. 워런이 그럼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초코바는 뭔지를 아느냐고 다시 물었다. 역시 그가 모른다고 답하자 워런은 그것도 ‘스니커즈’라고 대답했다.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하우절이 자신의 책에서 들려주고자 한 것은 ‘늘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해가 갈수록 다변화하는 세상에서도 불변의 법칙이나 불변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 무엇보다 가장 확실하게 불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말씀’이다.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는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인 성경을 우리가 믿고 신뢰하고 순종하려는 자체가 기적 중 기적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태신앙인인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과 세상을 인식하던 때 이전부터 하나님의 존재나 성경의 역사성을 믿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자라면서 한두 번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의 진실성에 대해서 의심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학문들을 공부하면서 그분의 존재와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확신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그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들을 의심의 여지없이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음은 여러 경로와 자료들을 통해서 그 사실성과 진실성을 확인했기에 요지부동 흔들림이 없다.

아쉽고 화가 나고 속상한 것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진화론자들이다. 때는 2002년 5월.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 식당에 내로라하는 진화론의 대가들이 양편으로 갈라 앉아 진지하게 토론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좌장은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J. 굴드. 도킨스 편에는 스티븐 핑커, 에드워드 오즈본 윌슨, 에른스트 마이어 등이, 굴드 편에는 리처드 르원틴, 노엄 촘스키 등이 앉았다. 이것은 마치 과거 스페인 프로축구 최고의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엘클라시코 경기를 붙는 것과도 흡사한 대사건이었다.

이들은 모두 ‘다윈의 후예’를 자처했다. 그들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다윈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보충했다. 그 외에는 진화심리학, 유전학, 발생학 등 각자의 텃밭도 다양하고, 견해도 각양각색이다. 특히 도킨스와 굴드는 ‘진화 무림의 양대 고수’로 서로 숙적이다. 일요일에는 양 진영의 맹주가 주제발표를 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주제가 ‘종교’였다. 도킨스는 종교를 사라져야 할 ‘정신 바이러스’라고 했고, 굴드는 종교와 과학이 중첩되지 않는 영역을 점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창조론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둘이 유일하게 의견이 일치했다. ‘세계적’이란 말에 기죽거나 속아선 안 된다. 세상에 진화론처럼 거짓된 이론은 찾아보기 힘들거늘, 정녕 그 사실을 몰라서 진화론자가 되었을까? 아니면 창조론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아서 궁여지책으로 진화론자가 된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다.

창조론을 받아들이면 뭐든지 이해가 쉬워진다. 복잡하고 어려워 풀 수 없는 실타래도 창조론만 용납해버리면 쉽게 풀려지거늘, 어찌 학자의 지식이나 양심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진화론의 허무한 신봉자들이 되었단 말인가? 우주나 동물과 식물과 사람 신체의 신비와 궁금증은 창조주 하나님만 인정하면 뭐든지 이해가 쉬워진다. 확실한 정답이 나오니까 말이다. 나 개인 신앙의 경험과 그로 인한 확신만으로도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쉽게 믿고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고학들을 통해서 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이 하신 일과 성경의 진실성에 대해 어느 때보다 강하고 깊은 확신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과 성경을 100% 믿는다’는 말이 ‘불신’이나 ‘의심’의 의미로 이해될 정도로 나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의 역사성을 분명히 알고 있다. ‘믿음’이란 단어는 추상적으로 이해될 때가 많다. 그보다 더 어울리고 확실한 개념은 ‘앎’이란 단어다.

자식이 “나는 우리 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어울리겠는가? 아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라고 해야 정상이다. 다시 말해서, 기존 신자들에겐 ‘믿음’이란 개념보다는 ‘앎’이란 용어가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믿음’이란 개념은 그 대상이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 반반의 도박이나 모험처럼 이해될 여지가 많다.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깊은 체험적 앎’이란 개념이다.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절대로 변화되지 않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고, 그분의 말씀은 어떤 시대나 환경이라 할지라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세상에 종말이 와도 그분의 사랑은 변함없고, 그분의 말씀은 모두가 영원불변하는 생명이다. 부족한 내게 아바 아버지가 되시고, 소중한 말씀까지 주셔서 믿고 알고 체험하고 순종하는 특권을 허락하셨다. 이제 남은 생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취하여 삼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열매 맺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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