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목사
이태희 목사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약 700년 전에 살았던 미가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 5:2)

미가 선지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2-3)

그렇다면 그의 근본이 태초에 계신 하나님이 왜 멸시와 질고를 당하셨는가?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4-6)

그가 진 질고는 바로 “우리의 질고”였다. 그가 당한 슬픔은 바로 “우리의 슬픔”이었다. 그의 찔림은 바로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의 상함은 바로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다. 그가 고난 당한 이유는 “우리 모두의 죄악”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리스도에게 담당 시키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바로 이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사53:7-8)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왜 다시 살리신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부활 역시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1000년 전에 살았던 구약의 선지자 다윗은 이렇게 예언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시16:10)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2:29-32)

그렇다면, 하나님이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3일만에 다시 살리신 이유는 무엇인가?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어야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 시키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3일만에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셨으니, 그것은 곧 사망의 이유가 되었던 죄를 이기신 것이고, 죄를 이기셨다는 말씀은 죄를 씻어내신 것이고, 죄를 소멸하신 것이고, 죄를 제거하신 것이다. 즉 죄를 사해 주신 것이다. 그가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씻음을 받고 우리는 “죄 없다 함”을,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복음이다.

본문의 이야기는 이 복음이 우리의 삶 속에서 현재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즉,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 선지자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미”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으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담고 있는 의미를 믿는 자들 마다 이 앉은뱅이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구원의 역사를 “오늘도” 동일하게 경험하게 될 것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3:19)

“너희가 그리스도를 죽인 죄를 회개하라.” 이것을 바꿔 표현하면 “너희의 죄 때문에 그리스도가 죽었음을 알라.” “나의 죄 때문에 그리스도가 죽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21:22-23)

내가 매달려 있어야 할 그 나무에 아무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달린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받게 된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죄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부터 구원받았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19-20)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3:28)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롬5:1)

본문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이 거지는 인간의 죄악과 허물로 인하여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저주받은 실존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진노와 사망의 저주 아래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2)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교회 안의 성도들조차 이와 같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 무지하거나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서는 환호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해서는 불쾌하게 여긴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이 나에 대해 진노하신다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어떻게 감히 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굳건한 “자기 의”에 도취되어 하나님이 감히 나를 심판하실리가 없다고 믿고 있고, 또는 “자기 연민”에 도취되어 하나님이 설마 내게 진노하실리가 없다고 굳건하게 믿고 있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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