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환 목사
김요환 목사

오늘날은 신학생들 뿐 아니라 많은 성도들도 신학을 공부합니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할 때 잘못된 태도로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래 ‘신학’은 ‘신앙’을 설명하는 도구인데, 언제부턴가 신학의 이름으로 신앙을 파괴하는 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새롭게 배운 신학으로 타인을 정죄하고 우월감에 사로잡히는 이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자유주의 신학을 가지고 전통적 신앙을 파괴하는 이들입니다. 성서 비평학으로 성경을 난도질해가며 성경의 권위를 밀어내는 것이, 바로 미숙한 이들이 신학을 처음 공부할 때 보이는 태도입니다. 여태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신앙 전통의 논법과 가치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언제나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청교도들 등과 같은 건강한 전통을 신뢰하고, 성경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대하는 태도는 비평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성경을 근거로 나의 삶을 비평해야지, 지금의 상황에 맞추어 성경을 재해석하려는 태도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둘째로, 교파주의 신학을 가지고 자신과 다른 전통에 있는 이들을 멸시하는 이들입니다. 하이퍼칼빈주의의 신학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는 이웃 교단에 대해 단죄하고 정죄하는 태도는 신학적 미숙함에서 나옵니다. 신학을 공부하면, 나와 다른 전통에서 신앙의 틀을 형성해 나간 수많은 그리스도인 형제를 이해하고 포용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감리교 신앙을 가진 이들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접하면 그의 신학과 예정교리에 대해서 함부로 비판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칼빈의 생애에서 맺어진 그 교리는 오늘날 개신교회의 큰 보호막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장로교 신앙을 가진 이들이 웨슬리의 표준설교를 접하면, 그의 신학과 완전성화 교리에 대해서 함부로 비판하지 못할 것입니다. 웨슬리는 알미니우스와도 차별화되었으며, 성경이라는 한 책의 사람으로 그 당시 시대 정신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웨슬리의 생애에서 맺어진 부흥의 역사는 오늘날 개신교회의 지속적인 열정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신학 자체는 다방면으로 공부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가령 해방신학을 공부한다면서 구스타프 구티에르즈나, 혼 소브리노의 글이 어떻게 전개가 되고 있는지 모르고 함부로 그 신학을 ‘안다’라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칼빈주의 신학을 한다면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나, 헤르만 바빙크의 저서도 읽지 않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신학 공부의 태도입니다.

적어도 자신이 추구하고 탐구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성실한 독서와 1차 문헌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칼 바르트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려서 바르트를 비판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신학 공부의 태도입니다. 세상의 다른 학문들도 직접 연구 과정과 1차 문헌 읽기를 통해 성실한 실험 과정을 거칩니다. 하물며 신앙을 설명해야 할 신학 공부를 대충 대충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태도입니다.

신학 공부에 입문하려는 신학생들과 성도는 먼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공부해야 합니다.

첫째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성서 비평학과 주해 방법론도 물론 공부해야 하지만, 그 전에 성경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성경을 일독도 하지 않고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내수동교회 원로 박희천 목사님은 ‘성경을 100독 하지 않은 자는 전도사 하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까지 성경을 강조하는 이유는 성경이 기독교의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연구에 성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신학도 쌓이지 않습니다.

둘째로,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청교도를 공부해야 합니다. 기독교 전통은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의 유산에서 나옵니다. 이미 기독교 2000년 역사 동안 신학은 충분히 쌓여왔고, 이것의 거의 대부분은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의 문헌에 쌓여 있습니다. 또한 청교도들의 실천과 삶이 신학적 적용에 큰 모델이 됩니다. 만약 신앙 전통의 골격이자 원천이 되는 자료들을 생략하고 현대적인 신학만 접하면 신앙은 쉽게 병들고 주지주의로 흘러갈 위험이 큽니다.

셋째로, 복음주의 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복음주의 신학은 목회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교회공동체에 소속된 이들은 복음의 이야기에 감동된 이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더 굳건해지려면 복음주의 신학의 논법과 논리가 큰 도움이 됩니다. 스펄전, 무디, 로이드 존스를 비롯하여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프란시스 쉐퍼 등의 저서들은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성도들이 꼭 독서해야 할 기본입니다.

넷째로, 현대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 교부, 종교개혁자, 청교도, 복음주의만 공부해도 건강한 신학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신학과 최근의 신학적 트랜드를 숙지한다면 신앙의 내용을 진술하기가 풍성해지고 세속 학문과의 조류 속에서도 기탄없이 신앙을 설명해낼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기에 좋습니다. 바르트, 틸리히, 라너, 판넨베르크, 몰트만 등의 신학자들은 현대에 거장들입니다. 신학을 진지하게 하는 이들은 이들의 신학을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통에 철저하고, 전통적인 신학에 충실하다면, 이들의 신학도 분별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태도는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확신에서 근거합니다. 또한 언제나 성경의 지도를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참되고 바른 신학 공부의 태도입니다. 그와 동시에 나보다 앞선 신앙의 선배들과 학자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신학을 취미 삼아 공부하는 성도가 늘어만 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신학을 못 하도록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오히려 목회자들은 이들이 진지하고 성실하게 신학 공부를 임할 수 있도록 합당한 태도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신학교 교수님들도 처음 신학을 입문하는 이들에게 친절하고 목회적인 이야기로 이들을 끌고 가야 합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마친 학생들에게 충격을 준답시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강의실에서 쏟아놓고 이들의 신앙을 뒤흔드는 수업은 배려심 없는 매우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이런 무책임한 사람들 때문에, 신학무용론에 빠지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되고 바른 태도로 신학 공부에 임한다면 신앙은 더욱 건강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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