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이어가는 남자 허치. 그는 성실한 가장이지만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번번이 쓰레기 수거차를 놓치는 바람에 아내에게 핀잔을 듣고, 처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말단직원으로 일하며, 아내와는 권태기를 겪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강도가 침입하게 되고 그는 무기력하게 강도들에게 돈을 빼앗깁니다. 이 일로 그는 이웃은 물론 사건을 담당한 경찰에게도 놀림거리가 됩니다. 강도들과 격투도 불사했던 아들에게는 겁쟁이라며 무시를 당하게 되지요.

자존심이 몹시 상한 허치에게 만회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늦은 밤 그가 몸을 실은 버스에 우악스러운 불량배들이 올라탄 것이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댓 명의 건장한 불량배들을 때려눕힙니다. 사실 그는 악명 높은 전직 특수요원으로서, 지금은 무시무시한 이력을 숨긴 채 조용히 살고 있던 것이죠. 이 일로 허치는 러시아 마피아들과 일전을 벌이게 되고, 왕년의 실력을 선보이며 통쾌한 활극을 펼칩니다.

중년 가장의 권위 회복

영화 <노바디>(2021)는 ‘가족들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찌질한 남성이 알고 보니 극강의 능력자였더라’는 익숙한 설정을 따릅니다. 하지만 액션 장면들은 단지 상업영화로서의 오락적 쾌감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년 가장의 권위 회복’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는데요. 영화는 무기력해 보이던 허치가 감춰둔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마치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되찾는 것처럼 보이게끔 합니다. 그가 결전을 앞두고 아내에게 ‘이게 나야’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마피아 일당을 궤멸시킨 후 정보기관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장면은 영화의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지요. 허치의 늙은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하루 종일 서부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힘없는 노인인데요. 아마도 치매 또는 중풍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마피아들과의 전투가 벌어지자 허치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칩니다. 젊은 조직원들을 손쉽게 물리치지요. 그 또한 무시무시한 전직 요원이었던 겁니다. 아버지가 즐겨보는 TV프로가 찬란했던 미국의 개척사를 회고하는 서부영화라는 점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하는 중년 남성의 심경과 부합하지요.

‘무기력하고 쓸모 없는 수컷’이라는 소재는 근래 들어 자주 사용됩니다. 아마도 수세에 몰린 현대 남성들의 불안감이 영화라는 대중매체에도 반영된 것은 아닐런지요. 허치의 아내는 침대에서 허치와의 사이에 베개로 벽을 쌓습니다. 이 장면은 초라한 남성을 직설적으로 그려내지요. 허치네 집 앞 버스정류장에는 아내를 모델로 하는 광고판이 커다랗게 부착되어 있습니다. 아내는 아마도 유명인사인 듯한데요. 아내의 사진을 보며 턱걸이 운동을 하는 허치의 모습은 역동적이기보다는 ‘아내보다 무능한 남편’의 모습을 처량하게 묘사합니다. 그가 버스에서 불량배들을 흠씬 두들겨 패주는 장면은 ‘사실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현대 남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좋았던 가부장 시대’로 회귀하기를 원하는 중년 남성들의 은근한 열망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요.

격렬한 액션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What A Wonderful World』(미국의 재즈 가수 루이 암스트롱이 1967년에 발표한 노래)가 흐르는 대목은 찬사를 자아내는데요. 자존심을 챙긴 남자가 비로소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라며 외치는 듯합니다.

노바디
비범한 과거를 숨긴 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한 가정의 가장 ‘허치’. 매일 출근을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일과 가정 모두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아들한테는 무시당하고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강도가 들고 허치는 한 번의 반항도 하지 못하고 당한다. 더 큰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모두 무능력하다고 ‘허치’를 비난하고, 결국 그동안 참고 억눌렀던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는 내용의 영화 <노바디> ©영화 <노바디> 스틸컷

가장의 권위를 되찾기 위한 기독교의 해법

성경은 추락해버린 가장의 권위를 되찾을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말씀’을 자녀에게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지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자녀교육은 곧 신앙교육이었으며 여호와 신앙은 부모를 통해 자녀에게 전수되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써서 손에 매고 이마에 붙이고 대문에도 붙여서 항상 기억하고 생각’하라고 하셨을까요(신명기 6:6-9).

가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함으로써 하나님께 위임 받은 권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삶의 원리를 가르칠 때 그들은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은 한 가정의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올바른 신앙이 가장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계승될 때 가장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세워질 것입니다.

노바디
영화 <노바디> 포스터. 밥 오덴커크(허치 役), 코니 닐슨(베카 役) ©유니버설 픽쳐스 수입/배급

‘아재’들을 향한 응원, 그리고 기독교의 훈수

영화 <노바디>는 거침없는 액션의 쾌감을 제공함으로써 실추된 권위를 되찾고 싶어 하는 오늘날 ‘아재’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합니다. 환갑의 배우가 펼치는 활극은 무기력증에 사로잡힌 이 시대 우리들의 아재들을 향한 응원가와도 같지요. 그런데 기독교는 아재들의 마음속 한 곳에 웅크리고 있을 폭력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기보다는 담담하게 훈수를 두는 편을 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올바르게 길러낼 때 가장의 권위는 굳건히 세워진다고 말이지요.

“의인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할 것이며, 지혜로운 자식을 둔 아버지는 크게 즐거워할 것이다.”(잠언 23:24/새번역)

노재원 목사
 ‘사랑하는 우리교회’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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