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준 목사
노진준 목사 ©기독일보DB

유튜브 채널 백문일답은 최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힘든 분들은 꼭 들어야할 말씀!’이란 제목으로 ‘노진준 목사(전 LA한길교회)의 고난설교Ⅰ’을 전했다.

노 목사는 “고난을 당했을 때 우리를 돌아보고 무엇을 잘못했을지 생각하며 잘못한 점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경우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이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내가 미국 동부에 있었을 때, 한 자매가 내게 전화했다.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생물학 박사과정을 밟은 자매였다. 그녀는 내게 급히 찾아와달라고 했다”며 “내가 찾아간 곳은 정신 병동이었다. 그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온 몸이 아프고 쑤신 이후부터 거식증과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했다”고 했다.

노진준 목사는 그 자매가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유학을 왔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명과 기쁨이 없어졌다고 하더라. 그녀는 고민 끝에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꿨다”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서 존스홉킨스대학 생물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몸이 아프고 나서 그 자매는 ‘하나님의 뜻은 피아노 전공인데,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겨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꿨더니 하나님께서 나를 치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를 만난 건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노 목사는 그 자매에게 “오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기대하지도, 허락하지도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 걸음을 인도하시니까”라며 “고난을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와 심판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그녀는 얼마 후 퇴원했다. 그런 뒤 자매는 계속해서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하나님이 나를 치셨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으로 나를 치셨다’고 생각했다”며 “2-3달이 지난 후 연말 즈음, 그녀는 나를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다른 곳에 약속 있어서 만나지를 못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후, 그 자매에게 연락을 했는데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노진준 목사는 그녀의 자살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렇게 다루실 수 있을까.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데 순종할 수 없어서 마음속에 가지는 회의와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자살함으로 하나님께 항변하려 했던 것 같다”고 추측하며 “욥, 예레미야, 하박국을 기억하는가? 악인들의 형통함을 보고 의인들이 고난당한 것을 보며, ‘하나님은 어찌하여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만 계시냐’며 항변하고 하나님과 씨름했던 이들을 기억하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 ‘왜 인가’를 물어야 한다. 여러분이 신앙하면서 무조건 침묵하고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며 ”차라리 욥처럼 고난을 당하면서 ‘어찌하여 이 고난을 주시느냐’고 하나님께 항변하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항변하고 깊이 사고하며 어떨 때는 따지듯, 하나님께 물을 수 있는 건 여러분이 하나님과 대결하고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 욥의 경우처럼, 욥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답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었다”고 했다.

특히 “(욥은) 고난의 원인을 찾으려했던 게 아니라 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냐’고 물었던 것 같다”며 “그런 질문을 우리는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사건에서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자기 자식을 죽이라는 끔찍한 요구를 하시면서 그의 순종을 확인하기를 원하셨을까”라고 했다.

그는 “이 사건을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장 편안할 때 그를 부르셨다. 이민 생활이 끝나고 마음의 큰 아픔이었던 무(無)자식에서 벗어나 자식을 얻은 때”라며 “아브라함은 아들이 컸고 자리 잡은 게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셨을 때,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며 감사함을 표현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당했던 고난보다 더욱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고난이었다. ‘네 사랑하는 독자를 내게 바치라’는 것”이라며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불평했다고 나오지 않았다. 그가 하나님을 믿었지만 고통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브라함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감격은 없었을 것 같다. 밤새도록 잠을 설치고 사라와 이삭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왜를 수없이 외쳤을 것 같다”고 했다.

노진준 목사는 “그리고 (아브라함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었다. 걸어가는 중에 아들이 묻는다. ‘여기 횃불도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느냐’고 하자 아브라함은 ‘제물은 하나님이 마련해주실 것’이라고 답했다”며 “하지만 아브라함은 찢어질 듯 아플 것 같다. 고통스럽게 아들을 데리고 간다. 아버지가 제단 위에 아들을 묶는데 (이삭은) 그냥 있다. 나라면 벌써 도망갔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시며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안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노 목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을 잡으시면서 “그만하면 됐다. 기분 좋게 껄껄 웃으면서. 나는 네가 아들하고 너무 사이좋게 지내니까. 네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서.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는지, 네 아들을 더 사랑하는지. 내가 시험해보고 싶었는데. 너는 내 사람이야. 네 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구나. 기분 좋다. 하하”라고 말했을 지를 되묻고 “저라면 하늘을 향해서 주먹을 쥘 것 같다. 하나님. 이런 시험은 부당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시나요.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지는 않으실 텐데. 그 아들을 죽이라는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라도 결국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하는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서 전면적인 회의를 했을 것 같다. 아브라함은 그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유함’을 얻었지만 하나님의 고통은 그때 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며 “왜냐면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셨을 때, 즐겨 사용하셨던 표현”이라며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역사의 한 시점에서 우리 인간들에게 알려주시고자 아주 위험하고 모험적인 일을 감행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건 하나님이 불의하고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일”이라며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자손들에게도 ‘내가 네게 준 아들이 바로 그런 아들이란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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