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부흥 설교자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의 설교 철학을 잘 알려주는 한 문장이 있다. “It is a poor sermon that gives no offense; that neither makes the hearer displeased with himself nor with the preacher.”
우리말로는 다음과 같다.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고,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갖게 하지도 않으며, 설교자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 설교는 형편없는 설교다.”
이 말의 핵심은 설교의 목적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참된 설교는 청중들의 죄를 드러내고, 자기기만을 깨뜨리며,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사람은 때때로 자신을 향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그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에게도 부담이나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성경에서도 이런 모습이 반복된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라고 말했을 때, 다윗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불편함이 자기 양심을 찔러 회개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불편함이 반드시 그처럼 선한 결과만 맺는 것은 아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죄를 지적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세례 요한을 존경한 헤롯은 그의 말을 인정했으나 회개하진 않았다. 오히려 체면 때문에 세례 요한을 죽이고 말았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칭찬만 받지 않으셨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에 걸려 떠나갔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앞장섰다(요한복음 6장).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고 말했다(히 4:12). 칼날같이 뾰족한 말씀을 들으면 양심에 찔림 받지 않을 수 없다.
조지 휫필드가 말한 “불편함”은 설교자의 무례함이나 공격성을 뜻하지 않는다. 설교자가 거칠고 독설을 퍼부어서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진리가 인간의 죄성을 찌를 때 발생하는 “거룩한 불편함”을 의미한다.
좋은 설교는 사람을 단순히 상처 주는 설교가 아니라, 죄에는 찔림을 주고, 양심에는 각성을 주고, 마음에는 회개를 주고,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도하는 설교이다. 그래서 설교를 평가할 때 “은혜 받았다”, “감동적이었다”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수 있다.
“그 설교가 나를 하나님 앞에서 불편하게 만들었는가?” “그 설교가 내 삶의 어떤 부분을 뒤집어 놓았는가?”
참된 설교는 항상 위로만 하지 않는다. 먼저 상처를 드러내고, 그다음에 치유한다. 먼저 죄를 폭로하고, 그다음에 대안인 복음을 선포한다. 휫필드가 강조한 점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 내 설교에는 그 거룩한 불편함을 초래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지 점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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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