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푸른교회 조성노 담임목사

늦가을이기도 하고 초겨울이기도 한 11월이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11월 중하순의 늦은 오후, 무심코 달력을 바라보다 벌써 한 해가 거의 다 저물었음을 실감합니다. 붉고 노랗던 잎들을 털어낸 나무들이 이제 제 몸속에 동그란 나이테 하나씩을 더 그려 넣고 있을 즈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바울은 구체적인 언급도 없이 너희가 이 시기를 알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깊은 밤>이라고 합니다. 이는 당시 로마에 있던 성도들이 겪어야 했던 박해상황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과 함께 곧 불어 닥칠 혹독한 환난의 바람을 예감하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로마서 13장은 국가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관처럼 이해되어 왔습니다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롬 13:1)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13장은 오히려 로마 정권에 대한 증오로 야기될 수 있는 무모한 희생이나 피흘림을 막고자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보다 높은 차원의 기본자세를 제시한 것이지 결코 어떤 상황에서라도 삶을 연장하는 것만이 상책이라는 식의 비굴한 복종을 권고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역시 어떤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그 같은 권면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낮이 가까운 것처럼 오늘의 암흑을 뚫고 비춰오는 내일의 빛을 앞당겨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밤이란 지나간 낮을 기준으로 보면 점점 더 깊어가는 것이지만 다가오는 새벽이나 내일을 기점으로 보면 그만큼 새날에 가까워진 것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내일을 기준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비록 모든 것이 꽉 막힌 것 같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둠이 짙은 것 같지만 그 흑암의 틈새로 비춰오는 새벽의 여명을 미리 바라 봄으로써 희망을 잃지 않고 늘 새롭게 숨 쉬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낮이 올 것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냥 멍청히 앉아 내일을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겨울나무들이 자기 스스로는 떨어버릴 수 없었던 낡은 잎들을 서풍을 이용해 말끔히 날려버리듯 밤을 이용해 때 묻은 모든 것, 더럽고 추한 악습들과 어둠의 일들을 과감히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권고는 그런 소극적인 금령(禁令)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놓아버리고 떨어버리라는 것은 보다 튼튼한 것, 보다 귀하고 참된 것을 붙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롬 13:14)고 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의 모든 권고의 초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위기를 당합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이것 만큼은!>하고 붙잡을 게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님을 그렇게 옷 입듯 굳게 붙잡고 계십니까? 세계는 지금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모두가 역사 전쟁에 내몰리며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전환과 진통의 깊은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는 일이고 빛의 갑옷을 입는 일입니다. 밤의 정경에 취하거나 밤의 현실에 절망하며 포기할 것이 아니라 내일의 빛을 앞당겨 보며 바울처럼 마치 밤을 낮인 듯 사는 것입니다.

/노나라의 별의 보내는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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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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