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
▲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

인생의 여정이 아름다운 것은 매일의 삶이 새롭고 뭔가를 많이 아는 것 같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누군가를 안다고 확신하지만 그 사람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편견(Jumping to conclusions)된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것으로 볼 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알고서 판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판단하는 실수를 너무나 많이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 그 기준은 "나 자신의 마음에 저울"이다. 그런데 마음의 저울은 사실에 의한 "증거의 저울 추"가 아니라 그 사람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의해 판단이 정해진다. 이것에 대해 스페치 부인이 말하기를 "우리는 사람들 자체를 판단하지 않고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판단한다."심지어 어떤 경우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말을 전하는 사람의 관계 때문에 편견된 시각에 동조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견의식을 가지고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과정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결과로 보여지는 것을 가지고 평가를 하기 때문에 큰 과오를 범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과정을 모르고 결과만을 가지고 누군가를 바라본다면 쉽게 분노할 수 있으며 실수를 범한 사람을 절대로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정죄하고 죄인으로 여기는 판단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인간은 강한 것 같고 뭔가의 보여지는 현상을 보고 판단을 하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항상 연약하기에 사악한 원수에 의해 유혹을 받기가 쉽다. 사단이 인간에게 주는 유혹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 하나는 편견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경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 건강한 삶이 아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를 경계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고 본다. 필자도 이 경우에 저촉이 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해가 저문 어느 여름 하늘에 아내와 함께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 어느 한 레스토랑에 간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창가 밖에 출렁이는 바다의 풍경을 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서 보니 평상시에 잘 아는 지인의 부부가 창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분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너무나 반갑게 여기며 같이 동석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분들의 상황이 어떤지를 모르기에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사양을 했으나 정중한 부탁으로 나중에는 한 테이블에 앉아 자신들의 삶에 대해 나누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이 그 부부를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며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조금이나 알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부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을 표면적으로 알고 편견을 가지고 이제까지 살아왔다는 것에 하나님에게도 부끄러웠다.

그들과 대화를 통해 하나님으로 부터 한 가지 지혜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편견은 무지(無知)이다."그래서 인생은 살면 살수록 고개를 숙이는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삶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수많은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말한다면 그들은 고아나 과부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외형적으로만 바라본다면 쉽게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왠 팔자가 그리 쌔", "부모 없이 크는 고아는 범죄를 쉽게 행한다."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정말로 그들의 삶의 과정을 본다면 그들의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고아들의 삶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것을 보면 "고아가 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에 71%가 학교를 중단한다.", "고아가 된 십대의 여자 아이들 중에 71%가 임신을 한다.", "고아가 된 아이들 중에 90%가 길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떠돌이 삶을 산다." 어릴 때부터 한 번도 부모로 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고아들의 삶은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같은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고아들의 힘든 삶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쉽게 판단하기에 자녀를 둔 부모들은 고아들과 자신의 자녀들이 친구 맺기를 바라지 않는다. 과부 그리고 싱글 엄마로 사는 삶도 고아의 삶 만큼이나 힘든 것이 현대 사회 모습이다. 그들은 혼자서 자녀를 양육하며 직장 생활을 해야 하고 남편이 없는 빈 자리까지 자녀들에게 채워 주어야 하기에 고통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들이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말을 하지만 때로 그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유대인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은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을 받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여긴 그들이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그 내용을 보면 어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은 강도로 부터 옷을 빼앗기고 심하게 맞고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난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보고 피하여 다른 길로 가게 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한 사마리아인 중에 한 사람이 강도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불쌍히 여겨 치료를 해주고 여관에 데려다가 그 주인에게 돌보아 주도록 부탁을 하고 그에 대한 사례를 여관 주인에게 한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사람들이 보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예배를 리드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강도만나 죽게 된 사람을 돌볼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이 그런 편견의식을 깨뜨리고 자신에게 주어질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 버리고 강도만나 자에게 사랑을 베푼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유대인들이 편견을 가지고 무시했던 한 사마리아인이다. 이것을 볼 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인종에 대한 것은 편견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 인류사에 보면 각기 민족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전통은 가치 있는 유산이며 모든 것이 소중하다. 그러나 문화와 전통이 우수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최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내가 가지고 있는 문화가 절대적이라고 여긴다면 그 사람은 편견의식 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사랑은 인종과 문화를 초월해서 등장되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편견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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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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