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매년 맞는 부활절은 지구상 교회의 가장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이다. 부활절은 인간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의 날이며 동시에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승리의 날이다. 부활절은 죄와 사망, 어둠과 절망과 권세가 물러가고 찬란하게 다가온 새로운 날이기에, 기쁨이 있고 승리의 축제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하여, 천안함 참사(2010)과 세월호 참사(2014)를 비롯하여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사건들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여러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빛이 환하게 비추시길 기도하며, 샬롬나비는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로 신음하는 인류를 향한 새 창조의 희망의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다시 살아나신 역사적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와 만물의 새로운 창조를 위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 자체이시고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수여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사건이다. 마른 가지에 순이 돋고 굳은 땅에서 생명이 움트는 것처럼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요, 희망인 것임을 알게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가 말소되고, 정의가 회복되며, 죽음이 정복되고 생명이 소생하게 된 사건이다. 부활은 죄와 고통의 지배 아래서 신음하는 인류와 모든 피조물을 고통과 신음에서 해방할 것을 약속하는 새 창조의 희망의 사건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이하여 겨울에 죽었던 것처럼 보이던 나무와 꽃들이 살아나는 것에서 우리는 부활의 경이로운 사건의 비유를 본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불의와 저주로 고통당하는 세상에 정의가 회복되고 평화가 강처럼 흐르는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열려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 온 인류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사회에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 정의와 평화의 새로운 희망이 열려야 한다.

2. 부활은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의 자유의 시작을 선포하도록 촉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됨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건이다.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골1:13)로 옮기셨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새 생명과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미 이루어졌음으로 이 땅에서 교회는 이 영광의 나라에 참여하는 "선취"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부활 사건은 이 세계가 폐쇄된 세계이며 이제 더 이상의 새로움은 없다는 운명론적인 선언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부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의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소극적 자세를 취하도록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 자신이나 타인의 죽음 앞에 두려워 떠는 종의 자세가 아니라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자유인의 소망과 기쁨을 가져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되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부활의 소망으로 이 땅에 불의에 대한 정의의 승리를 전하고 우리 안에 이루신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사회와 고난받는 북녁땅에 임하도록 섬겨야 한다. .

3.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각종 사건으로 인해 고통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비춰지기를 바란다.

일 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좌초되면서 너무나도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사고를 당하여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 희망과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활의 소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을 깨뜨리시고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활하심이 저희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오늘의 현실에서 부활의 결단과 생명력으로 일어서야 한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지금도 여전히 고통가운데 있는 자와 함께 하시고 눈물을 닦아주신다. 고난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방식이 될 수 있기에 상실감과 무능으로 인해 고통가운데 있는 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그의 부활에 동참하는 은혜가 있길 바란다. 오늘날 여러 불의의 사건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소망을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4. 한국교회와 목회자는 옛 사람이 죽고(mortification)고 새 사람이 살아나는(vivification) 삶을 살아야 한다.

한국교회와 목회자는 십자가 없이는 부활의 영광이 없음(No Cross, No Crown)을 기억해야 한다. 언제부터서인지 한국교회가 경제적인 풍요와 향락의 문화, 권력의 본능에 배가 불렀고, 이 배부름에 우리의 믿음이 마비되어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가는 모습들이 두렵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한 사람이다. 130년 전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에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하여 "이 백성들에게 복음 이외에 결코 다른 희망이 없다"며 십자가의 길, 삶을 걸어갈 때 이 민족에게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이 땅에 흘린 순교자들의 피를 기억하며 오늘의 현실에서 다시 한 번 결단하여 우리 자신이 죽고 예수가 살아나는 새로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5. 고통 속에 있는 이웃을 향하여 공명과 섬김을 보여줌으로써 부활의 빛을 비추자.

교회는 자신을 위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중세의 수도원이 아니다. 예배당에 갇힌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니다. 기독교인은 영혼의 구원과 동시에 자신이 몸담은 세계의 사회구조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새로운 기준은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기준으로 선포된 것이다.

교회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웃의 고통의 몫을 함께 지는 것을 포함 한다. 비정규직에 있는 자들, 도시빈민, 탈북자,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이때에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강도 만난 자에게 상처를 싸매주고, 데리고 가서 돌봐주고, 마지막까지 치유해주는 선행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자체로 순수하고 소중하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랑하지 않으셨다. 한국 교회는 이번 부활절을 기해 교회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랑을 행함으로 교회가 세상의 유일한 소망임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행이 교회에 기반이 될 때 교회의 존재가치가 더욱 더 드러날 것이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2015년 4월 5일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샬롬나비 #부활절 #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