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권 교수   ©기독경영연구원

"34층의 나지막한 회색빌딩의 중앙 현관 위에는 '런던 중앙인공부화소. 조건반사 양육소'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올더스 헉슬리(A. Huxley)의 1932년 작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라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첫 부분이다. 9년간의 세계대전을 통해 하나의 세계국가로 재건된 미래사회는 철저하게 계급사회이지만 공유, 안정, 균등 등의 이데올로기를 나름대로 구현하는 지상낙원의 외양을 갖추고 있다.

이 미래국가에는 인공 수정과 부화를 통해 인간이 태어나며 각 영역의 구성원들은 처음부터 계급구분이 확실하게 태어나고 조건반사 실험을 통해 직능별 구성원으로 양육된다. 알파계급은 고급지식, 상층관료들로 양육되고, 베타 계급은 중간관리자 계급으로, 그리고 감마/델타/엡실론 계급은 하층육체노동자들로 양육된다.

미래의 세계국가는 자동분업과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개발해 자동차 대량생산시대를 연 헨리 포드의 생산성 신화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인간학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문학적 희화화와 과장이 작동하지만 포드와 프로이트는 인간이 욕망통제를 통해 개조가능하다고 본 점에서 동일체다. 따라서 이 세계국가의 연도는 포드/프로이트가 기준이 된다. 소설은 포드 기원 632년에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런던인공부화소는 냉장 보관된 정자와 난자들을 수정해 부화시설 안에서 계급별 맞춤형 인간들을 출생시킨다. "우리는 또한 계급을 미리 정하고 조건반사적 습성을 훈련시킵니다."(이덕형 역, 문예출판사, 20쪽). 낮은 계급 인간들을 생산할 때는 산소 공급을 줄여 뇌세포 성장을 억제한다. 정상아에게 공급되는 산소공급량의 70%만 공급하면 난쟁이가 되고 지적 능력은 심각히 퇴화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델타계급 영아들이 책과 꽃을 영원히 증오하도록 만드는 조건반사훈련이다(28-33쪽). 8개월 된 영아들이 책을 집어 들 때는 엄청난 폭음이 터지고, 꽃을 만질 때는 전기 쇼크를 경험하도록 조건반사 훈련을 한다. 200번 정도 이 실험을 하고 나면 아이들은 영원히 책을 싫어하게 되고 꽃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능력을 박탈당한다.

세계국가의 총통은 하층계급 인간들이 독서로 시간을 낭비하거나 꽃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다가 자기 안에 있는 영혼의 실재를 깨닫는 사고가 일어나면 세계의 안정이 크게 손상될 것을 두려워한다. 인간이 자기 안에 자유가 있으며, 책을 읽고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수록 통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세계국가의 금서들은 성경, 시집,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비극(오셀로)이다. 인공적 세뇌과정을 통해서 미래국가의 총통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증언하는 모든 기억들을 도말해 버린다. 그래서 리어 왕 이야기, 예수의 수난 이야기, 파스칼 등은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조작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카바레로 바뀌었고 '소마'라는 정신안정제가 비타민처럼 상용되며 모든 인간들은 "지금 우리는 행복하다"는 자기 암시적 조작에 단련되어 우울증이나 슬픔, 고통과 분노 등의 감수성이 거의 퇴화되어 버린다.

이 절망적이고 폐쇄적이며 자기 충족적 세계국가에 반체제 인사가 등장하는데, 그는 셰익스피어를 몰래 읽는 존(John)이라는 혼혈인이다. 그는 런던인공부화소 소장과 미국 인디언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런던인공부화소 공장체제 밖에서 태어나, 양육된 야성적인 인간 심혼을 가진 존재다. 그는 물질 환경과 독립된 '영혼'이라는 실체에 집중하는 존재다. 그는 소마를 상용하며 조건반사에 단련된 인간성으로 살아가는, 촉감영화와 향기음악을 통해 작위적인 행복감에 젖어 사는 총통국가의 멋진 신세계를 조롱하고 도발한다.

존은 정신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소마 복용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소마를 주며 안정과 행복감을 강요하는 총통에게 말한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303쪽).

존은 총통에게 고문을 받으면서도 공장제대량생산 체제로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와 인간의 심리와 욕망, 의지와 정신역동을 심층∙심리적으로 연구하여 인간을 치료하려고 했던 프로이트를 신으로 떠받들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달력기준(포드력 632년 상황)으로 삼는 이 문명사회가 지워버린 문학과 종교, 인간의 자유와 애통지각의 능력을 옹호한다. 총통체제가 제공하는 즐거움과 안락함 대신, 그는 정신의 모험과 물질적 안정, 공유와 행복감,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자유와 하나님을 그리워한다. 그는 감히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한다. 그에게 영감을 주는 책은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이다.

이 디스토피아 소설은 실로 다양한 철학적, 인문학적 함의를 갖고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심각한 도전은 꽃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책을 읽고 사고함으로써, 그리고 자기언어를 회복함으로써 존재감을 찾을 수 있다는 인문학 옹호적인 함의다. 익살스럽게 비유하자면 꽃의 아름다움과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후 8개월 영아 때 산소의 70%만 공급받은 델타/엡실론 계급 하층육체노동자로 태어난 사람들로 오해받기 쉽다. 육체노동자가 하층이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 사유와 도덕적 판단도 하지 못하는 도구적인 직업인들은 다 하층육체노동자라는 말이다. 그들은 창조될 때 산소의 70%만 공급받았기에 자기 생각 없이 지시대로 육체를 사용해 노동한다는 점에서 하층육체노동자인 셈이다. 신참검사도 검사 동일체의 원리와 기소독점주의 등에 편승해 부패한 고위검찰공무원 상사의 지시를 아무 생각 없이 육체적으로 따라 수행하면 그는 하층육체노동자다.

북한의 주체사상 중 수령론, 뇌수 이론 등을 보면 수령이 북한이라는 사회유기체적 집단의 뇌를 대표하고 북한인민은 수령의 지시를 무조건 믿고 따르도록 강요당한다. 이 경우 북한주민 전체가 하층 육체노동자다. 자신의 도덕적 판단, 철학적 사유, 그리고 옳고 그름에 대한 심사숙고를 거치지 않은 상부명령 수행에 동원된 모든 자들은 하층육체노동자다.

요즘 데카르트적 코기토(사유하는 자아)를 갖고 주체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고도의 정신노동자가 지극히 드물다. 요즘 고위공직자 후보감들의 살아온 내력들이 한결같이 지저분하고 반인문학적이다. 대세에 따라 위장전입하고 병역기피하고 탈세하고 표절하고 아무 생각 없이 폭탄주 마시며 조직관행의 이름으로 공금 마음대로 횡령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한국의 정신노동자, 소위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은 이런 점에서 총통국가의 델타계급보다 더 비참하고 가련한(?) 육체노동자다.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이 심층 욕망 리비도가 시키는 대로 시궁창 같은 윤리적 슬럼지대에서 뒹굴며 젊은 날을 보내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고르고 고른 고위공직자 후보감들이 이렇게 한결같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을까? 육체의 정욕을 초월하는 고결한 인생관으로 젊은 날을 보낸 유능한 사람들이 어디에 갔는가?

총통의 위세에 눌려 옳고 그름을 판단을 빼앗긴 채 호구지책에 목매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미래국가의 총통의 먹잇감들이다. 총통은 우리를 온순하게 만들어 자신의 의지를 우리에게 부드럽게 강요하고 우리의 주체성을 약화시키거나 박탈한다. 총통은 우리가 영혼을 가진 소리치는 자유의 혼이 되기보다는 총통지시를 수행하는 기계가 되기를 원한다. 요즘 총통 같은 대통령 앞에서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는 장관들이 신문 가십(gossip)거리가 되고 있다.

총통연설시 박수 치는 것이 덜 진실하고 덜 열정적이라고 처형당한 북녘 땅 이야기나 대통령 말씀을 성실하게 받아 적지 않고 토를 달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고 면직통보를 받은 장관 이야기, 둘 다 참 한심스러운 총통국가의 작태다. 우리가 언제 총통의 위압적인 존재로 하나가 되고 작위적인 행복감에 젖어들 수밖에 없는 델타/엡실론 계층의 국민들로 구성되었는가? 아니다.

이 땅의 고위공직자들과 중간관리자들, 부목사들과 말단직원들이여! 꽃을 즐거워함으로써 그리고 주체적 사유와 자유의 존엄을 일깨우는 책의 원시림을 섭렵함으로써 우리를 델타계급으로 부려먹으려는 이 거대한 총통국가에 저항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굶더라도 책을 읽고 꽃향기에 취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7-8월 여름휴가철에 책 원시림에 파묻혀 자유와 영적 존엄을 되찾고 거짓된 소마 비타민제 대신에 야생에 핀 저 향기로운 꽃들을 즐기는 자유인이 되어야지 않겠는가? (기독경영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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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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