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는 자기에게 닥친 모순된 상황을 경험하면서 비록 삶에 대한 자기의 계획이 어그러지고 자기의 인식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점점 명확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 말씀이 생활 속에서 ‘실재’(reality)가 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비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과 심판하시는 비정한 하나님은 상반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상반된 말씀과 행위에 대해 가르쳐 주는 예언서가 바로 ‘호세아서’와 ‘아모스서’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여 자기 꿈을 실현하는 장소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아멘’이 되어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태어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조기호 - 애통하는 예언자 아모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깊이 빠져 살면서도,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교회 생활을 통해 세상의 때를 충분히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롯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그는 소돔 사람들과 섞이지 말고 소돔을 떠났어야 한다. 여전히 소돔에 살면서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를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마음 단호히 세상에서 떠나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사상과 생활 방식이 더 이상 우리의 생각을 오염시키고 우리를 잡아매는 올무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구체적인 말씀을 믿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요 1:14). 따라서 예수님을 특정한 이미지에 결부시켜서 흠모 또는 숭배하거나 이와 유사하게 교회에 충성하거나 목회자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믿음은 예수님의 구체적인 말씀 하나하나를 받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홍훈 - 문밖의 음성
왜 한 민족이나 집단 혹은 개인은 자유로워야만 하는가? 우리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넘어,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한 자유에 대해 알아야만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제한의 중요성과 자유에 내재한 책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모임에서 “나는 완전하게 자유로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거든!” 하는 주장을 듣곤 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진정으로 자유롭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멈출 수도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나쁜 습관이나 태도를 버리고 마음을 고쳐 보려고 열심히 노력할 때, 우리는 자신이 이기심이라는 옷을 입고서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예임을 알게 된다.
찰스 험멜 - 참 자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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