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막히는 이유는 하나님의 귀가 어두워서가 아닙니다. 내 삶에 하나님과의 소통 통로가 죄로 인해, 나태함으로 인해, 혹은 세상과 타협하느라 막혀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라고 질타했습니다. 양다리를 걸친 신앙을 회개하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을 때 기도의 불이 내려올 착륙장이 마련됩니다. 능력을 구하기 전에 먼저 점검하십시오. 나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될 수 있는 깨끗한 통로가 확보되어 있습니까? 회개를 통해, 관계의 회복을 통해 기도의 제단을 먼저 수축하십시오. 당신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 답답하십니까? 당신의 노력으로 불을 피우려 하지 말고 엘리야처럼 무릎을 꿇으십시오.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적인 가능성을 다 내려놓은 채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십시오. 그때 세상을 이기는 기도의 불이 당신 삶에 임할 것입니다.
이사무엘 - 하나님께 로그인하다
세월이 바뀌어도 목회를 잘하는 분들의 공통점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바로 성실함이다. 주변에 담임 목회 잘하는 분들을 보면, 어김없이 성실한 모습이 빛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을 깨워서 늘 기도하고, 늘 일찍 교회에 출근하며, 종일 목회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담임목사가 되는 순간 저절로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부교역자 시절에 완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목회는 관계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혹시 그간 사역하는 교회들마다 인간관계로 어려움을 겪었다면, 다시 한번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부교역자 때 관계 형성이 어려우면 담임목사가 된 후에도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관계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성격상 사람들과 관계 형성이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발전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정현 - 부교역자 베이직
예수 공생애의 ‘하이라이트’는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따라서, 공관복음서들은 예수의 죽으심을 그의 생의 절정으로 삼았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그의 21장 가운데 10장을 예수의 마지막 한 주간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생애와 교훈들은 모두 십자가에서 비춰 나오는 빛으로 조명해야 함을 보여 준다. 따라서,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을 살았던 인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꼽고 있다. 예수의 생애가 역사에 남긴 결과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역사에 등장한 다른 어떤 인물의 행적보다 더 중대하다. 세계 문명사가 인정하는 신기원은 예수의 출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수의 죽음은 민중에게 아무런 감화나 영향을 미칠 수도 없었다. 다만 피로 얼룩진 땅, 그 순교와 혁명의 넋이 잠들지 못하는 땅에서 원한에 맺힌 죄수들의 죽음으로만 인식될 뿐이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의 죽음을 ‘십자가의 도’(道)라고 하여 복음을 간결하게 요약한 용어로 만들었다(고전 1:18, 21; 갈 2:20).
엄원식 - 보라 이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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