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 장로
김병구 장로 ©바른구원관선교회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구조와 인간 내면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이 작품을 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그 잔혹성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논리를 과장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기본 규칙은 단순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탈락해야 한다. 이 논리는 게임의 규칙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사회의 작동 원리다. 학교와 직장, 시장과 경쟁 사회 전반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되고 평가받으며, 타인의 탈락 위에서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도록 요구받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오징어 게임을 자본주의 비판으로 읽는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빚에 쫓기는 개인, 실패에 대한 무자비한 응징, 상층부가 고통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장면은 자본이 신이 된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게임의 구조는 겉으로 보기에 공정하다. 모두에게 동일한 규칙, 동일한 출발선, 선택과 능력에 따른 결과. 이는 구조만 공정하면 인간은 달라질 수 있다는 사회주의적 이상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다. 약자는 먼저 희생되고, 협력은 오래가지 못하며, 권력은 즉시 폭력으로 변한다. 이 드라마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새 사회’는 ‘새 인간’ 없이 오지 않는다.

여기서 질문은 체제가 아니라 인간으로 향한다. 왜 인간은 환경이 바뀌어도 같은 죄를 반복하는가.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가장 불편하지만 가장 정직한 답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원죄다.

원죄란 단순히 죄를 짓는 성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죄란 인간 존재의 방향 자체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로 꺾여 있는 상태를 뜻한다. 스스로 옳다고 판단하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으며,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정당화하는 내적 상태가 바로 원죄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갑자기 악해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원죄를 가진 평범한 인간들이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있는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다. 그래서 시청자는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불안을 느낀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과연 달랐을까?”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죄를 전제하지 않는 체제는 언제나 같은 한계를 반복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자유를 절제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사회주의는 인간이 권력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한다. 그러나 원죄를 가진 인간은 자유를 주면 탐욕으로 흐르고, 권력을 주면 신이 되려 한다. 그 결과 어떤 체제든 결국 통제와 폭력으로 귀결된다.

드라마 속 VIP들은 이러한 인간 본성이 만들어낸 가짜 신의 전형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지만 책임지지 않고, 고통을 소비하지만 희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대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을 고쳐 쓰려 하지 않으셨다. 복음은 인간의 도덕적 개량이 아니라 존재의 죽음과 부활을 말한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고, 성령으로 거듭나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이것이 중생이다.

구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생 이후 성도는 성화의 길을 걷는다. 죄의 권세는 점점 약화되지만, 이 땅에서는 여전히 죄와 싸워야 한다. 그러나 복음은 더 나아가 구원의 완성을 약속한다. 그것이 영화(glorification)다.

영화란 단순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죄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제거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더 이상 죄와 싸울 필요가 없고, 죄를 짓고 싶은 욕망 자체가 사라지는 완전한 새 창조의 상태다. 성도는 점점 나아지는 존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워지는 존재로 완성된다.

‘오징어 게임’은 하나님 없는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귀결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지만, 출구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 출구는 복음에 있다. 체제를 바꾸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다루신다. 원죄 아래 있던 인간을 죽이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며, 성화의 길을 걷게 하시고, 마침내 영화로 완성하신다. 이것이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지 못한 유일한 희망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병구